작가라면 의례적으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글을 잘 쓴다는 공치사다. 어떻게 글을 그렇게 잘 쓰냐는 말이 통상 첫 인사말로 나온다. 물론 좋은 의도로 칭찬하는 찬사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은근히 불편한 기분이 든다. 글쟁이를 기능인으로 하대하는 뉘앙스가 그런 말속에서 풍겨나오기 때문이다. 글쟁이는 글이 손 끝에서 술술 그냥 나온다고 믿는 모양이다.
한 술 더 떠, 인사말이나 자기소개서 따위를 써달라는 개념없는 무뢰한도 적잖다. 글을 잘 쓴다고 글이 손에서 화수분처럼 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쓸 것'이 머릿속에 괴여 있어야 그걸 꺼내서 잘 써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잘 쓰려면 2단의 요건을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 머릿속에 '쓸 것'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 1단이고, 머릿속의 '쓸 것'들 중에서 '그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2단이다. '2단'은 '무엇을 쓸 것인가'로 치환해도 무방하다.
소설도 그와 다르지 않다. '쓸 것'을 머릿속에 채우는 일과 '무엇을 쓸 것인가'란 의사의 결정이 그 출발점이다. '쓸 것'을 채우는 일은 평소 경험과 독서를 통하여 부지런히 양식을 쌓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곧 주제 설정이다. 따라서 소설쓰기의 실질적인 첫 절차는 '무엇을 쓸 것인가'의 '그 무엇'을 결정하는 일이 된다. 주제는 전체 글의 통일성을 꾀하고 긴밀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주제는 본디 모습대로 널려있는 소재 중에서 제재로 편입시키는 기준 잣대다. 주제와의 연관성이나 친연성이 높은 소재 또는 적대성이나 상대성이 두드러진 소재를 그 제재로 선택함으로써 주제를 갈고닦는 용도로 활용한다. 주제는 소설쓰기의 목적이고 소설을 일관되게 지배하는 통일 원리다.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이루는 바탕 요소이고, 인생의 본질에 대해 가지는 중심사상이자 공감을 끌어내는 엑기스다. 요컨대 주제는 창작의 으뜸가는 원동력이다.
소설 쓰기를 수정 현상에 비유한다면 난자에 생명의 씨를 뿌리는 정자나 달걀의 노른자위에 있는 하얀 배자가 주제다. 정자가 없는 난자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 배자가 있는 유정란은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지만 배자가 없는 무정란은 생명을 품어내지 못한다. 주제가 없는 글은 무정란과 같아서 죽은 글이다. 주제가 없는 소설은 비록 겉모습이 소설로 보인다 하더라도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소설은 주제를 드러내놓고 보여주진 않는다. 대놓고 주제를 내세우는 글은 논설문이나 설명문이다. 소설은 보물을 직접 주지 않고 보물섬으로 안내하는 지도를 보여주고 이정표를 세워둔다.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보물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보물을 꼭꼭 숨겨두자는 건 아니다. 소설의 묘미는 보물을 찾아가는 즐거움에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소설의 첫걸음이다. 주제를 설정하면 그 절반은 쓴 셈이다. 시작이 반이다.
오철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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