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경 영남신학대 기독교 영성학 교수
"모든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All Life is Problem Solving) 20세기 대표적 철학자이고,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우리에게 익숙한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의 말이다. 그는 1992년 교토상 수상 기념 연설에서 "문제들과 사랑에 빠졌더니 어느날 철학자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항상 문제에 직면하고, 그 문제와 씨름하며 살아가고 있다.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많은 사람이 소망을 품고, 서울과 뉴욕, 런던, 파리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우리 앞을 가로막은 어두운 그림자를 단숨에 걷어낼 기세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그 긴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고, 기후 온난화의 문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꿈을 잃은 청년들의 심장은 멈췄고, 출산율 저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희망을 노래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수많은 문제를 간직한 채 새해를 시작했다.
새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우리네 삶에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기존의 생각을 바꾸고, 뒤집고, 비틀어보면 그 길이 보일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창의적 통찰력이다. 그래서 쾰러(Wolfgang Köhler)는 '통찰을 문제 상황과 그 해결방안에 대한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통찰은 일종의 발견법이고, 통찰의 수행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통찰을 통한 문제 해결은 갑자기 예측할 수 없게 나타난다. 그래서 통찰을 '아하 현상'(aha phenomenon)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우리도 새로운 발견을 위한 지식을 습득하지 않아도, 갑자기 문제의 답이 떠오르는 현상을 종종 경험한다. 동양에서는 '활연관통'(豁然貫通)이란 말로 통찰을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궁구하면 어느날 확 트여 모든 것을 관통한다'는 뜻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치를 관통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통찰의 힘은 인류 역사에 명확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유대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yal Noah Harari)는 인류 생존의 역사를 세 개의 혁명에서 찾았다. 그가 말한 혁명은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과학혁명이다. 이러한 세 혁명을 통해 인류는 급변하는 지구환경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자기 역사를 만들어왔다. 인지혁명이든 과학혁명이든 인류 생존의 혁명은 지식의 축적과 정보의 양의 결과가 아니라 새로운 사고방식의 출현과 더불어 일어났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사물을 바라보는 데서 희망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통찰의 본질은 존재하는 지식들을 관통하는 새로운 관계들의 인식이다. 현재 상황에서 문제는 관계의 '간격'에서 발생하고, 통찰의 수행은 그 관계의 '간격'을 메우는 데 있다. 인문학은 세계와 이웃, 그리고 자신 사이에 있는 '간격'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고, 과학은 또 다른 의미에서 연구 대상과의 '간격'을 좁히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소통의 부재는 결국 이웃과 나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이 간격을 메우는데 일생을 바쳤던 것이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예수님을 지성으로 왜곡된 세상에서 오직 직관과 통찰의 삶을 살아가신 분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일생 동안 '간격'을 메우는 데 헌신했고, '간격'을 메우다 십자가를 지셨다. 그는 가난한 자와 부자, 약자와 강자, 병든 자와 건강한 자, 겸손한 자와 교만한 자,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간격'을 메우셨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통찰, 우리 앞에 놓인 모든 간극의 폭을 좁히는 통찰. 순간순간 통찰을 수행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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