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유명한 해맞이 명소 중에 강원도 양양 낙산사가 있다. 바닷가 절인 낙산사에서 보는 동해 일출을 최고로 치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장관이어서 조선시대에는 '낙산일출'(洛山日出) 장면으로 주로 그려졌다. 낙산사는 바다와 어울린 자연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창건 배경이 의미깊고 여러 시대를 거치며 역사성이 누적된 절집이다. 그래서 일찍이 대관령 동쪽의 명승인 관동팔경(關東八景)에 낙산일출이 꼽혔고, 벼르고 별러서 금강산 유람에 나선 여행자들은 관동팔경과 해금강을 일정에 넣기도 했다.
겸재 정선의 '낙산사'는 화면을 대각선으로 나눈 오른쪽을 동해로 채워 그림의 반이 바닷물이다. 그 바다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일렁이는 거대한 파도를 사람이나 전각 크기와 비교해 보면 화가가 동해바다를 얼마나 경이롭게 바라보았던가 하는 심정이 느껴진다. 정선은 붓 두 자루를 한꺼번에 쥐고 빠르게 긋는 양필법(兩筆法)으로 이렇게 그렸다고 한다.
일출의 장관을 세 명의 갓 쓴 양반 일행이 절 옆의 높직한 벼랑에 앉아 구경하고 있다. 이 자리는 신라 고승 의상이 기도한 곳이라고 해서 의상대(義湘臺)라는 이름이 전해져왔다. 이름난 사찰에는 창건 설화가 있게 마련인데 이곳에서 의상대사가 기도해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이야기이다. '낙산'이라는 이름은 관세음보살이 산다고 하는 '보타락가산'에서 나왔다. 낙산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으로 꼽힌다.
지금은 이 자리에 의상대 정자가 서있다. 현재의 의상대는 1925년 지었고 만해(卍海) 한용운 스님이 그 유래를 '의상대기'로 기록했다.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홍련암은 이 때도 있어 바닥 아래로 파도가 보이는 독특한 위치도 그림에 설명되어 있다.
탐승객들은 일주문으로 걸어 들어가 축대 위의 빈일루(賓日縷)를 지나 법당과 요사를 거쳐 다시 의상대에 오르고, 홍련암에도 들어가 마룻장을 들치고 파도를 보았을 것이다. 여러 장면으로 눈에 담았을 낙산사의 이모저모를 정선은 멀리 하늘 위에서 한 눈에 굽어보는 전능한 시점으로 장쾌하게 한 컷에 담았다. 겸재 선생이 명소를 그리는 방식이다.
낙산사는 불교를 억눌렀던 조선시대에도 사세(寺勢)를 유지했는데 태조 이성계가 양위한 후 이곳에 직접 행차해 법회를 연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종도 대신을 보내 법회를 열었고 세조도 지원했다.
'돋는 해를 공경히 맞이하는 누각'인 낙산사 빈일루는 낙산일출과 연관되지만, 요순시대처럼 국태민안하기를 바란 조선 왕실의 염원과도 연관된다. 빈일이 '서경'(書經)의 '요전'(堯典)에 요임금의 다스림을 "인빈출일(寅賓出日) 평질동작(平秩東作)"이라고 한데서 나왔기 때문이다. 빈일루는 해를 맞으며 천시(天時)를 헤아리고 동작(동쪽이 가리키는 봄에 시작하는 일, 곧 농사)이 고르게 차례대로 이루어져 순조롭기를 바라는 누각이름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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