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앞둔 학생은 미래 전망, 경제적 예상, 현재의 유행을 고려해 진로를 결정한다. 병원의 과를 지원하는 것도 입시의 조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외소산(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의 핵심으로 흔히 메이저과라고 한다. 물론 다른 과들도 중요하지만, 이 네 개과는 직접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과라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이 중 하나도 온전한 과가 없는 듯하다. 메이저 과는 공부할 양도, 수련을 통해 배워야할 양도 많아서 4년 정도 전공의 수련 기간이 필요했다. 여기에 더해 1~2년의 전임의 과정도 필요했다.
그런데 지원자의 급감으로 인해 내과를 시작으로 외과, 소아청소년과가 3년제로 바뀌었다. 산부인과도 내부적으로 3년제 전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3년이면 수련 기간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힘든 전공의 과정을 1년 줄여줄 테니 제발 전공으로 선택 해달라는 안타까운 읍소이다.
'몸도 목숨도 다 된 것'이라는 뜻으로 몹시 위태롭거나 절박한 지경을 표현할 때 절체절명(絶體絶命)이란 말을 사용한다. 이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소아청소년과 작금의 현실이다.
2022년도 전국 수련 병원 56곳의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전체 정원 200명 중 47명이 지원해 23.5%에 그쳤다. 지난해 지원자가 대폭 감소해 37.3%를 기록했었는데 올해는 지원율이 더 크게 덜어진 것이다.
젊은 의사들의 소아청소년과 기피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전공의를 뽑지 못한 병원이 수두룩하다. 수도권의 병원들 중에는 3년째 전공의를 뽑지 못한 병원도 있다. 특단의 대책으로 수련과정을 4년에서 3년제로 전환했지만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수도권의 초대형병원 소아청소년과만 정상적으로 운영될 뿐 지방 병원의 소아청소년과는 파행을 빚을 수밖에 없다.
대구 지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대구 5개 수련병원의 소아과 정원 16명 중 단 2명만이 지원했다. 작년에도 2명만 지원했다. 작년과 올해만 놓고 보면 32명의 소아과 전공의들이 일해야 하는데 4명밖에 일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소아청소년 환자들을 위한 입원실이나 응급실, 중환자실, 신생아중환자실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작년에도 '위기의 소아청소년과'라는 기고를 통해 병원과 지자체의 대책마련을 촉구한 바가 있다. 소아과 위기를 단순히 병원 한 진료 과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대구 지역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를 이어질 수 있어 제발 관심을 가져 달라는 호소였다.
1년이 지난 시점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와 보건복지부, 소아청소년과 학회차원에서 소아과 지원방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진료 수가 및 소아청소년과 전담 전문의 고용 지원 등의 방안이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대구 지자체는 코로나19 사태로 여력이 없어 보인다. 병원도 코로나 시대에 소아청소년과 수익 악화로 선뜻 지원하기를 꺼린다.
최일선에 있는 소아청소년과 담당 선생님들만 답답해하면서 온 힘을 다해 절체절명의 소아청소년과를 지탱하고 있다.
내년 3월 소아청소년과 진료 혼란을 막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지자체와 병원 측이 먼저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이 높아져 진료가 정상 궤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향후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 지 알 수 없다. 그때까지 견뎌내야 한다.
우선 응급실 소아 전담의 및 입원 전담의 지원에 지방재정 및 병원의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 경제적인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의료 환경을 끌어올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대구 지역 소아청소년과의 진료 인프라 붕괴사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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