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尹 '가족 리스크' 블랙홀… 역대 대통령·후보 '가족 잔혹사'

입력 2021-12-17 17:52:07 수정 2021-12-17 21:07:25

YS·DJ 아들 고초…盧·MB 형제 시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사회대전환위원회 출범식이 끝난 뒤 아들이 불법 도박을 했다는 의혹 보도와 관련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 왼쪽)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배우자 김건희씨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를 3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거대양당 두 유력 후보 이재명·윤석열 후보를 둘러싼 '가족 리스크'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자 과거 대선 국면만 되면 벌어졌던 '가족 잔혹사'를 떠올리는 이들이 늘고있다.

온갖 부정부패가 판쳤던 군사독재 시절은 제쳐두고, 1987년 민주화 이후만 살펴봐도 상당수의 대통령과 대선후보들이 '가족 리스크'로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다. 가족주의가 강한 한국에서 배우자와 자녀는 곧 스스로의 분신으로 인식되고, 가족의 죄도 자신의 죄로 치환되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다. 김 씨는 김 전 대통령의 막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으나 한보 사태 연루를 기점으로 수사망에 걸려 몰락,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 처음 구속됐다는 오명을 역사에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사건과 IMF 금융위기로 치명타를 입고 정권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넘겨줘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예 재임 시기 세 아들(홍일·홍업·홍걸)이 모두 권력형 뇌물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차남 홍업 씨는 알선수재 혐의로, 3남 홍걸 씨는 '최규선 게이트'에, 장남 홍일 씨는 나라종금 로비 의혹에 연루됐다. 이들은 정권 말 '홍삼 트리오'로 불리기도 했으며, 결국 김 전 대통령이 사과 성명을 내야 했다.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는 가족 의혹에 치명상을 입고 선거를 망친 사례로 꼽힌다.

지난 16대 대선 당시 '대세론'이 나올 정도로 지지율이 높았던 이 전 후보는 두 아들의 병역 문제가 터지면서 주저앉았다. 이른바 '병풍 사건'이다. 이후 김대업 씨의 폭로가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이미 선거 흐름은 돌이킬 수 없었고, 이 전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역대급 역전승을 내주고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양김'이 아들 때문에 고초를 치렀다면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은 형이 문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권 초부터 지속적으로 '봉하대군'이라고 불렸던 형 노건평 씨가 연루된 갖은 이권개입 의혹에 시달렸다. 이 의혹은 결국 2006년 세종증권 관련 수사로 노건평 씨가 불구속 기소돼 징역형을 받고, 재판 도중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맺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은 '만사형통'(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정권 말인 2012년 일부 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친형이 구속됐다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그리고 2021년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아들의 도박·성매매 의혹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부인 김건희 씨의 허위이력 논란 등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잊을만 하면 떠오르는 정치권의 '가족 리스크'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내놓는다.

정치심리평론가 사공정규 교수는 "물론 두 후보의 '수신제가'에도 문제가 있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인 가족 리스크에만 집중하는 여론과 언론도 문제"라며 "연좌제도 아니고, 대선후보에게 가족 문제는 부수적인 문제이고 국민들에게 실제 영향을 미치는 건 정책과 신념이다. 지나치게 가족 문제만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