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빵 좋아하세요?

입력 2021-12-17 18:30:00

구효서 지음/ 문학수첩 펴냄

대구 달성군 가창면 찐빵가게에서 시민들이 찐빵을 기다리고 있다. 매일신문 DB
대구 달성군 가창면 찐빵가게에서 시민들이 찐빵을 기다리고 있다. 매일신문 DB
구효서 지음/ 문학수첩 펴냄
구효서 지음/ 문학수첩 펴냄

"그런 식으로 안다. 말로는 할 수 없지만 재미있는 글, 이렇게밖에 쓸 수 없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구효서 작가가 장편소설 '빵 좋아하세요?'를 냈다. '단팥빵과 모란'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작가는 올 봄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를 펴낸 바 있다. 그러면서 '요'로 끝나는 소설을 계속 내고 싶다고 했다. '빵 좋아하세요?'가 그러고 나온 작품이다.

폐암 말기인 엄마의 소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단팥빵'을 먹어보고 죽겠다는 바람을 좇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모녀, 경희와 미르의 이야기가 소설의 시작이다. 엄마는 '말로 할 수 없지만 맛있는 빵,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단팥빵'이라는 미션을 준다. 대전에 있다는 건 확실하다고 했다. 그런데 '28년 전 먹은 것'이라는 게 힌트인지, 함정인지 모를 일이다. 효녀 심리를 자극하는 미션에 딸 미르는 적극적으로 나선다.

엄마의 기억을 좇아 찾아간 곳은 한복집이 돼 있다. 한복집 주인은 대전의 명물이 된 한 빵집을 알려준다. 튀김소보로인 걸로 봐서 성심당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단팥빵의 대체물이 되지 못한다. "단팥빵 찾을 때는 단팥빵만 생각하는 거"라는 결연한 의지, 오로지 단팥빵이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전국 행군이 시작된다.

경기 분당, 충담 당진, 경북 상주 등 저마다의 원조 자부심 넘치는 곳을 찾아 단팥빵 기행에 나선 모녀의 행군은 목포에서 멈춘다. 찾아간 곳은 나무개제과점. 나무개는 목포의 옛 이름이다. 특이하게도 단팥빵 말고는 다 판다. 이유가 특별하다. 명예의 전당 영구 결번처럼 단팥빵을 기리기만 할 뿐 생산하진 않는다는 거다. 너무 맛있어서 전설의 단팥빵이 된 그 빵은 제빵사가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전설의 제빵사도 10년 전 사라져 은둔중이라는 답을 듣는다. 메이저리그와 무협지의 융합 모드다.

대구근대골목단팥빵
대구근대골목단팥빵

엄마 경희가 대학 시절 먹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단팥빵'을 먹어보고 죽겠다는 의지, 5년 전 정길과 현지 통역으로 인연을 맺은 미르의 필연 같은 우연, 이런 것들이 폭발적으로 결합하면서 전설의 제빵사를 찾는 데 성공한다. 예측보다 어렵지 않게 찾은, 은둔 중이라던 제빵사는 모녀가 알던 사람이다.

미르, 경희 모녀와 전설의 제빵사 정길 세 사람의 시점에서 쓰였다. 이들 사이의 숨은 사연이 추리소설처럼 전개된다. 그러나 눈치 빠른 독자라면 초반부에서 결말을 가늠한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세상이 됐다. 인간 내면을 묘사하는 부분은 섬세하다. 20대 여성 미르에 대한 중년남성 정길의 정염을 알차게 묘사한다.

전설의 제빵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온종일 파기에 전력하는 도공의 모습과 닮았다. 마음에 드는 하나의 작품을 위해 공들여 만든 작품들을 깨부수는 행위는 장구한 물리적 시간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떤 소스보다, 엄마의 손맛만큼 중요한 건 '시간의 향'이라는 메시지가 솟아난다. 엉뚱하게도 '혀를 잡으면 마음도 잡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따라온다.

360일을 기다려 5일을 피었다 떨어지는 모란이 아름다운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 역시 기다림의 미덕을 설파한 것으로 해석된다. '단팥빵과 모란'이라는 부제가 붙은 까닭이다. 과작(寡作) 성향의 작가들을 위한 변호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제 성에 차지 않아 많지 않은 작품을 단팥빵에 빗대 설명하는 듯하다.

빵장수단팥빵
빵장수단팥빵

예상했겠지만 이 소설은 결코 빵집 순례기가 아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소설에는 단팥빵을 비롯해 여러 가지 빵의 기원, 레시피 일부, 관련 이야기 등이 첨가돼 있다. 다른 음식도 곁다리로 등장하는데, 읽다 보면 태국음식 솜쌈 정도는 익힐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안동 원이엄마 이야기가 끄트머리에 나온다. 전남 목포 나무개제과점과 화순 능주역을 오가는 주인공들이 마지막에 향하는 곳은 안동이다. 야간에 읽는 건 권장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단팥빵을 이야기하는 소설이기에 단팥빵을 먹으며 볼 수밖에 없다. 288쪽, 1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