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김홍도(1745-?)의 ‘사녀도'(仕女圖)

입력 2021-12-13 06:30:00 수정 2021-12-13 08:47:14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담채, 121.8×5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종이에 담채, 121.8×5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풍스런 중국 옷 차림의 여성을 아무 배경없이 그린 김홍도의 '사녀도'이다. 상류층 여성의 생활 모습이 당나라 때 그림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고, 송나라 때부터 이런 그림이 '사녀도'로 불리며 일종의 미인도로 여겨졌다. 사녀도 속 여성은 사치스런 차림으로 머리에 꽃을 꽂고 있기도, 부채를 부치기도, 둥근 비단 부채를 들고 있기도 하다.

김홍도가 30대에 그린 '사녀도'는 그가 잠화사녀(簪花仕女), 휘선사녀(揮扇仕女), 환선사녀(紈扇仕女) 등 고전회화의 전통을 흡수해 우리 정서에 맞게 재창조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용모는 잔잔한 세필로 부드럽게 묘사했고, 옷은 속도감 있는 활기차고 대범한 선으로 요약해 필선의 성질이 대비된다.

김홍도는 맑은 담채로 화려함을 은근하게 나타냈고, 기교적 묘사를 자제한 단아한 함축으로 이상적 여성상을 미인도로 그려냈다. 차분한 눈매와 우아한 손끝은 그녀의 고귀한 신분을 표정과 태도로 보여준다.

김홍도의 '사녀도'는 중국식이면서도 조선적이고 김홍도적이라는 오묘한 절충을 이루어낸 그림이다. 조선의 상류층은 사녀도, 신선도, 고사도 등에서 잘 드러나는 이런 화풍의 김홍도를 좋아했다. 김홍도의 풍속, 산수풍속, 실경산수 등이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20세기가 되어서다.

'벼슬할 사(仕)'의 사녀는 원래는 말 그대로 관직을 수행하는 여성 관리이다. 맡은 일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이었다. 고대 중국의 사관은 우사(右史)와 좌사(左史)가 있어서 천자의 언(言)과 행(行)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우사는 말을, 좌사는 움직임을 기록했다. 항상 지켜보는 눈이 있어 통치자의 말과 행동을 낱낱이 적어 둠으로써 역사를 두렵게 여겨 권력남용을 방지하려는 뜻이었다.

천자의 부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여성 사관인 여사(女史)가 이 일을 맡았다. 예전에는 피카소만큼 유명했던 화가의 대명사인 중국 동진의 고개지 작품으로 전하는 '여사잠도(女史箴圖)'에 두루마리와 붓을 들고 왕후의 언행을 기록하는 여사가 그려져 있다. 문자를 알고 글로 지어 기록할 수 있는 지적인 여성이므로 여자선비, 여사(女士)라고도 했다. 지금 나이든 여성에게 쓰이는 높임말인 여사는 여기에서 유래한다.

서명은 '신축(辛丑) 사월(四月) 사능(士能) 위(爲) 연파관주인(煙波觀主人) 작(作)'이다. 연파관은 누구의 당호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분이 있어서 김홍도의 유일한 미인도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정조 5년인 1781년 단원선생이 서른일곱에 그렸다.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