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의 영국이야기]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일을 하며 소소한 행복발견

입력 2021-11-18 12:12:03 수정 2021-11-18 19:49:40

이진숙

영국인의 삶을 작게 나누어 들여다봐도 재미있지만, 크게 전체를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영국인은 '오락가락 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을 잘하는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무언가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무엇으로 행복해지는지 혼동하지 않으며, '매일의 축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듯 서두르지도 않는다.

그들은 삶을 좋아하는 것들로 구성한다. 그것들과 서서히 친숙해지고, 자기만의 즐거움에 가치를 매기며, 오래 누적된 시간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을 즐긴다. 침착하고 태연하게 자신의 삶을 돌보며, 자분자분 찾아오는 작고 소소한 행복을 발견한다. '평생 함께해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평생 해도 즐거울 것 같은 일들'을 한다. 마치 그런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온 국민이 그렇게 산다.

걷기는 영국인의 독특한 일상이다. 대부분 혼자 걷거나 개와 함께 걷는데, 비가 와도 걷고 추워도 걷는다.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가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할아버지가 장바구니를 들고 걷는데, 부부가 함께 걷는 모습을 제일 많이 본다. 우리는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걷는데, 우리보다 훨씬 더 늙은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다.

정원 가꾸기는 전 국민의 취미다. 모두가 정원 있는 집을 원한다. 바쁜 세상에서 돌아오면 정원으로 나간다. 자신만의 낙원에서 여유를 누리고, '예쁜 것을 볼 때의 행복이 주는 충만감'을 즐긴다. 정원 용품을 사러 가든 센터에 가고, 가드닝 클럽과 가드닝 수업에 참여하고, 가드닝 잡지를 읽으며, 텔레비전에서 가드닝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홍차는 빠뜨릴 수 없는 일상이다.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마시고, 시간에 구분 없이 언제든지 마신다. 홍차가 음료일 뿐만 아니라, 분위기를 바꾸는 도구임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노팅힐>에서 주인공 남자는 할 말이 없을 때, 여자에게 만나자고 할 때, 화를 내며 떠나는 여자를 위로할 때, 차 이야기를 꺼낸다. 영국인은 사고로 크게 다쳐도, 충격을 받아도 차를 끓일 사람들이다.

친구는 '오래 사귀면서 그윽해지는 존재'다. 성별을 뛰어넘고 어떤 세대와도 친구가 될 수 있지만, 날이 갈수록 깊어지며 평생으로 이어지는 관계여야 한다. 매년 영국에 갈 때마다 친구와 나는 일주일에 한번 꼬박꼬박 만났다. 친구는 긴 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나에게 영국을 보여줬다. 집으로 불러 함께 차를 마셨고, 식사를 했고, 바비큐를 했다. 십년을 만난 친구는 십년 동안, 이십오 년을 만난 친구는 이십오 년 동안 쭉 그랬다. 내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기부와 기증이 생활 속에 있다. 곳곳에 타인을 위한 사회활동과 자선행사가 있다. 사람들은 물건은 물론이고 대저택과 정원까지도 기증한다. 평소 돈이나 재능으로 사회에 일조하며, 크고 작은 자선을 하고 산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에서 한국에 사는 영국인 제임스 후퍼는 '쓰리픽스 챌린지'를 제안했다. 24시간 내에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을 등반하는 도전으로 강원도 나무심기에 기부한 일은 매우 영국적이다.

영국인은 이사는 잘 가지 않지만, 집수리는 지속적으로 한다. 친구인 린튼 가족은 해마다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는 가족음악회를 연다. 미술전시회에는 노인들이 넘쳐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카누를 타고, 더 이상 두발 자전거를 못타는 할아버지는 세발자전거를 탄다. 좋아하지 않으면 뭐 하러 하겠는가?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꾸준히 하겠는가?

<굿라이프>에서 최인철 교수는 "좋은 삶은 '좋은 것이 많은 삶'이다."라고 했다. 좋은 것의 많고 적음의 신호는 좋은 기분, 삶에 대한 만족, 그리고 의미라고 했다. 좋은 삶은 좋은 사람들, 좋은 돈, 좋은 일, 좋은 시간, 좋은 건강이 있는 삶이며, 좋은 자기로 사는 삶과 좋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삶이라고 했다. 영국인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보면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알 수 있다. 영국인은 '좋은 것이 많은 좋은 삶'을 사는 것 같다.

이진숙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