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가을편지

입력 2021-11-18 10:59:54 수정 2021-11-21 18:06:27

박채현 동화작가
박채현 동화작가

전화가 드물던 시절, 편지는 유용한 연락수단이었다. 전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되뇌다가 마침내 연필을 들어도 틀리기 일쑤였다. 써놓고 보니 지나친 거 같아 지우기도 했다. 다시 쓰고, 고쳐쓰기를 여러 번,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기까지. 편지에는 전하고 싶은 간절함이 깃들어있다.

내가 편지를 처음 받은 건 예닐곱 살쯤이었다. 외따로 떨어진 우리 집엘 우체부는 용케도 찾아왔다. 기차로 서너 시간 거리에 사는 숙부의 편지였다. 글을 읽지 못했기에 언니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누군가 편지를 읽으면 우리는 편지 앞에 옹기종기 모여 무릎을 꿇었다. 편지의 내용은 늘 그랬다. 잘 있느냐, 엄마 말씀 잘 들어라, 공부 열심히 해라, 당부가 많았다. 일찍 아비를 여읜 조카들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숙부는 같은 말을 새로운 말인 듯 편지에 적어 보냈다. 우리는 며칠 동안이라도 숙부의 말씀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남보다 먼저 나가 일하고, 남보다 나중에 일손을 놓아라. 손해 보고 살아라. 그런 사람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을 때 숙부는 나를 앉혀놓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친구와 밥을 먹으면 밥값의 우수리까지 1/N이 익숙한데, 손해 보고 살라니. 고리타분한 훈시라 여긴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숙부의 말이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말씀대로 살지는 못해도 그 말이 이정표처럼 마음의 길을 안내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남에게 당해서도 안 돼."

가끔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내 아이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싫지만 남에게 당하며 사는 것도 싫다. 양팔 저울을 놓고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말은 절대 '0'이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사는 것이 어디 그런가. 알게 모르게 폐를 끼치고 또 당하기도 한다. 내 말대로 하려면 아이는 사회를 포기하고 밀림 속에서 혼자 살아야 할 것이다.

너와 내가 재화를 주고받고 마음을 주고받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면 한 치를 다투고 한 푼을 다툴 때가 많다. 때로는 한 푼이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생존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내 아이만 손해 보고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수룩한 아이들이 내 말만 믿고 그저 내줘버릴까 봐 노파심이 생긴다.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 실망하게 될 때, 문득 숙부의 말이 떠오른다. 숙부의 말은 마음을 너그러이 갖고 양보하라는 말일 것이다. 아등바등 제 몫을 챙기려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뒤로 물러날 줄도 알라는 말이다. 그 말을 이제야 바로 듣는다.

숙부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퇴원했다. 며칠 뒤 마지막이 될지 모를 만남을 앞두고 있다. 바람이 낙엽을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다그르르, 바람이 읊는 가을편지에 숙부의 말씀을 덧입혀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