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도서관을 가다-영남대] 영남대 박홍규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만나는 '오리엔탈리즘'

입력 2021-11-11 10:27:46 수정 2021-11-13 07:43:12

세계 정복 기술…유럽이 몽골보다 앞섰다?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서울대를 비롯한 많은 대학교에서 권장 혹은 필독 도서로 지정하고 있다. 또 국내외 유명 신문사가 펴내는 명저 목록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현대의 고전이다.

그런데 이 영어책의 한국어 번역본은 단 하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의 교보문고 출판본이 유일하다. 필자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영어본으로 공부했던 이 책을 영남대에서 대학혁신사업으로 기획한 '위대한 책 위대한 생각'이라는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으려고 좋은 번역본을 찾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오리엔탈리즘의 역사',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 등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저서와 번역본이 여럿 출판되었고 영문학계를 비롯해 여러 학계에서 이 책에 대한 연구물을 내어놓았는데도 정작 이 책에 대한 번역본이 한 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이런 점에서 박 교수의 국내 유일 번역본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다.

'위대한 책 위대한 생각' 수업을 준비하면서 영어본과 번역본을 한 문단 한 문단 꼼꼼하게 비교하였다. 혹시 원문의 뜻이 학생들에게 잘못 전달되는 것을 방지하고 또 얼마나 잘된 번역인지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비교 작업을 하면서 박 교수의 번역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깨닫고 감탄하였다.

영문학자가 아닌 법학자인 박 교수는 어떤 부분은 의역을 다른 부분은 직역하였는데, 원문의 뜻이 한국어로 정확하면서도 유려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truths are illusions about which one has forgotten that this is what they are"이라는 니체의 말을 "진리란 그것이 착각임을 망각하고 있는 착각이다"라고 간명하면서도 정확하게 번역하였다.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영국이 위임통치하던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땅 위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는 유대인들의 시도 때문에 발생한 혼란을 피해 이집트로 이주했으며, 다시 십여 년 뒤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렇게 다양한 나라를 경험한 만큼 여러 유럽 언어에 능통했던 사이드는 독주회를 열 정도로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그는 20세기 최고의 천재였다. 이 천재성 덕분에 사이드는 영어는 물론, 다양한 언어로 기술된 수많은 책과 문서를 연구할 수 있었고, 그 천재성과 성실성의 산물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다양한 언어로 쓴 수많은 문헌에 대한 언급과 인용이 등장하며 수많은 주석이 달려있는데, 이것이 이 책의 번역을 그만큼 어렵게 만든다. 법학자인 박 교수의 국내 유일 번역본이 귀중한 것은 그 어려운 번역작업을 묵묵히 해낸 학자적 성실함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사피엔스'에서 유럽이 세계를 정복해 이룩한 현대의 제국이 몽골 제국 등 이전의 제국과 다른 이유를 현대 유럽인들이 새로운 영토와 새로운 지식 정복을 동시에 추구했다는 점에서 찾았다. 그런데 '오리엔탈리즘'을 읽으면 이 말의 의미를 전율이 돋도록 느낄 수 있다.

사이드는 영토와 지식 정복의 대표적인 사례인 프랑스의 이집트 정복과 영국의 인도 정복을 자세히 논하면서 유럽인들에 의한 영토와 지식의 정복이 식민 통치를 통한 정치적 지배뿐만 아니라 정복자와 피정복자 모두의 정신을 지배하는 정신 지배 체제 구축임을 폭로하였다.

이 오리엔탈리즘 프로젝트가 학문체계로서 대학의 학과를 기반으로 해 학문의 재생산 시스템을 만들어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까지 지배하는 실상을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정섭 교수(영어영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