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증기 사라진 영풍석포제련소…차분하지만 씁쓸함 가득

입력 2021-11-08 16:32:26 수정 2021-11-08 21:21:32

51년 만에 첫 조업중단 영풍석포제련…친환경 기업으로 새출발 다짐
"근무 못해 임금 삭감 안 되도록" 전직원 정상 출근 피해 최소화
10일 가동중단 손실 600억 추산…직원들 "공장 멈추다니 안 믿겨"
제련소 인근 주민들, "매일 돌아가던 공장 멈춰 섭섭한 기분"

8일 오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석포제련소가 영업이 중단돼 공장 굴뚝에 수증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8일 오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석포제련소가 영업이 중단돼 공장 굴뚝에 수증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공장 외벽
공장 외벽 '수중기발생지역'라는 글씨가 쓰여 있지만 8일부터 공장 가동이 중지돼 약 보름 간 수중기를 볼 수 없다. 윤영민 기자

8일 오전 찾아간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영풍석포제련소 인근. 수십 년간 한 번도 쉬지 않은 공장의 굴뚝에서 더 이상 연기가 나지 않았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공장 외벽에 쓰인 '수중기발생지역'이라는 대형 표지판이 무색했다.

공장 가동이 멈춘 이곳 분위기는 차분했다. 출근하는 직원들의 걸음은 무거웠고, 이날 비까지 내린 탓인지 우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오전 8시 30분쯤에서는 선진도약 선서식이 시작됐다. 의지를 다지는 직원들의 목소리는 힘찼지만, 얼굴에서는 감출 수 없는 씁쓸함이 가득해 보였다.

한 직원은 "매일 활기차게 돌아가던 공장이 멈췄다는 사실이 믿기 않는다"며 "이번 처분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평생 열심히 일한 공장이 멈췄다는 것 자체는 섭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8일 0시부터 51년 만에 봉화 영풍석포제련소가 공장 가동을 중지했다. 조업정지 처분은 10일 간이지만 재가동을 위해서는 7일 간의 준비시간이 필요해 사실상 약 20일 동안 이곳에서 생산되는 아연은 없다.

가동이 중지된 제련소를 바라보는 인근 주민들의 마음도 무겁긴 마찬가지다. 51년 간 자리를 지켜온 제련소를 지켜본 이들도 공장이 멈췄다는 사실이 믿기 않는 듯 했다.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의 입마다 '가동을 멈춘 제련소' 얘기로 가득했다.

낮 12시 55분 제련소 인근 중화요리 전문점. 손님이 한창 몰린 시간이지만 일찍 손님이 끊겼다. 윤영민 기자
낮 12시 55분 제련소 인근 중화요리 전문점. 손님이 한창 몰린 시간이지만 일찍 손님이 끊겼다. 윤영민 기자

이 분위기는 점심시간 인근 식당가로 이어졌다. 낮 12시쯤 식당마다 점심 손님이 반짝 몰리긴 했지만 대부분 1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텅 빈 식당이 됐다. 다소 이른 시간에 손님이 빠지자 식당 주인들은 밖을 내다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인근에서 중화요리 식당을 운영하는 임태인(60) 씨는 "원래라면 오후 2시까지 앉을 시간도 없이 손님을 받지만 1시간이나 일찍 손님이 뚝 끊겼다"라며 "식당을 쉬어도 마음이 불편한데 공장이 멈춰있는 모습을 보고 출근하는 직원들도 입맛이 없고 착잡할 것 같다"고 했다.

난방이 중단된 제련소 사택과 급히 보일러를 설치한 공중목욕탕. 윤영민 기자
난방이 중단된 제련소 사택과 급히 보일러를 설치한 공중목욕탕. 윤영민 기자

공장 가동 중지로 당장 생활에 불편을 겪는 직원들도 생겼다. 회사가 마련해준 사택에 거주하는 347가구 직원들이다. 공장에서 발생하는 열로 사택에 난방이 공급되는데, 공장이 멈춘 탓에 난방이 끊긴 것이다. 다행히 이 열로 운영되는 인근 공중목욕탕에는 급히 난방기를 설치했다.

불편함을 줄이고자 사측이 난방비를 지원키로 했으나 각자 전기장판, 난로 등을 따로 마련해야 했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외부에 목욕탕까지 가야하는 수고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석포제련소 관계자는 "400가구에 이르는 집에 각각 난방기를 설치하기는 어려움이 있고, 기존에 난방 용품을 갖고 있는 직원들도 있어 난방비를 지원하기로 했다"며 "공장 재가동될 때까지 추위가 더디게 오길 바랄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