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무적(無敵)의 논리, 인과성(因果性) 불분명

입력 2021-11-03 10:19:16 수정 2021-11-03 15:46:53

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사회 현상의 인과성을 증명하는 데 기여한 데이비드 카드, 조슈아 앵그리스트, 휘도 임번스가 수상했다.

이들은 자연적인 실험을 통해 인과성 크기를 측정했다. 대학교 졸업자는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소득이 높은가.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교육을 1년 더 받으면 소득이 9%포인트(p) 증가한다. 교육이 소득 격차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도발적인 연구 결과도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실업이 증가하는가. 이들은 최저임금이 올라도 실업률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외국에서 이민자가 들어오면 실업이 증가하고 임금은 하락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다르다. 이민은 실업과 임금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 세 사람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은 그만큼 사회 현상의 인과성 파악이 어렵다는 뜻이다. 자연과학에서 인과성을 증명하는 것은 쉬운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흡연과 폐암 간 인과성이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린다고 생각한다. 의사들도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법원은 흡연과 폐암 간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20년 전 흡연자들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항소심, 대법원 판결에서 모두 졌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소송을 했지만 1심에서 졌다. 법원은 흡연자가 폐암에 걸렸을 때 담배가 원인인지, 다른 원인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예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분쟁이다. 이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근로자 측은 반도체 작업이 백혈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분쟁은 삼성전자가 인과성이 의심되는 경우에도 보상하는 것으로 해결됐다. 삼성전자가 백혈병, 난소암, 유방암, 사산, 유산에 대해 보상했지만, 반도체 작업과 이러한 질병 간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상하되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삼성전자의 입장이었다. 법원도 반도체 작업과 백혈병 간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 2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1년이 안 됐지만 접종 완료율은 75%를 넘었다. 이 과정에서 중대한 이상 반응 1만 건, 사망 1천 건이 발생했다. 중대한 이상 반응의 경우 백신 인과성이 인정된 것은 5건이다. 사망의 경우에는 인과성이 2건 인정됐다. 질병관리청은 백신 부작용을 좁게 인정한다.

폐렴 환자가 백신으로 인해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하면 사인(死因)은 폐렴인가. 질병관리청은 폐렴을 사인으로 간주한다. 백신은 사인이 아닌가. 여기서 무적의 논리, 인과성 불분명이 등장한다. 백신이 사인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논리다. 백신이 사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사인이라고 할 수도 없다. 백신이 사인이라고 할 수 없으면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 인과성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 질병관리청은 치료비 1천만 원을 지급한다.

인과성 불분명이라는 논리가 통하는 이유는 백신 부작용을 증명하는 책임이 시민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은 백신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발표로 책임에서 벗어난다. 억울하면 부작용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증명하라, 증명하면 배상하겠다는 입장이다.

평범한 시민이 백신 부작용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노벨의학상을 받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증명해야 하는 측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상대방은 인과성 불분명을 내세우면 된다. 담배 회사는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담배가 폐암의 원인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할 뿐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작업이 백혈병의 원인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반도체 작업과 백혈병 간 인과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만 강조하면 된다.

백신 피해자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위를 했다. 질병관리청은 대답이 없다. 질병관리청은 백신 부작용을 넓게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백신과 중대한 이상 반응 간 인과성이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백신과 사망 간 인과성 없음도 증명해야 한다. 현 정부가 가장 잘한 일이 코로나 방역이라고 한다. 그런 정부가 백신 부작용을 좁게 인정한다면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 현 정부의 정치적 슬로건(slogan)을 다시 생각한다. 사람이 먼저다. 그렇다. 선거보다 사람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