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책방으로 지난해 6월 문을 연 동네책방
고정 수익 확보 위해 책방 이용 회원 모집
독서모임 활발…강영숙 소설 '라이팅클럽' 연상돼
중고책방에 갈 때는 손수건 하나쯤 필요할지 모른다. 오래 쌓인 책 먼지를 닦기 위해서가 아니다. 읽었던 책을 마주하면 그때의 기억들이 연쇄적으로 불려오기 때문이다. 미처 준비되지 않았는데, 뭉텅이로 소환되는 과거의 나와 마주한다.
계획도시처럼 반듯하게 구획된 포항 양덕동의 동네책방, '리본책방'은 중고책방으로 시작한 곳이었다. 'Reborn'의 의미도, 'Ribbon'의 의미도 있는 책방이라고 했다. 책방지기 문정민 씨는 "다시 태어난다는 뜻도 있지만 서로를 묶어 연결하는 리본의 모양을 떠올리면 된다"고 했다. 책은 서로를 묶고 이어주는 도구였고 기억을 연결해 주는 매개였다. 책을 고리로 서로가 만나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자는 것이 그의 지향점이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도서관에 있었다면 손 바뀜과 손때로 책등이 남아나지 않았을 책들이 이곳에서는 비교적 깨끗하다. 높다란 선반에는 켜켜이 책이 쌓였다. 체취처럼 감출 수 없는 중고책방 특유의 농밀한 잉크 향이 번져 나온다. 책 페이지마다 배어있던 그 향이 좋아 깊은 숨을 들이켠다.
종류가 다양하다. '설득의 심리학', '이갈리아의 딸들', '체게바라 평전' 등 한때 유행처럼 번져 한가락했던 책들이 새 주인을 기다린다. YBM 영한대역문고도 반갑다. 1986년 초판이 발행됐으니 1980, 90년대 학번들에게는 제법 익숙한 책이다. 2007년 인쇄된 것으로 제법 깨끗하다.
책방지기 문 씨의 본업은 커뮤니케이션 강사다. '쓰고 달콤하게'라는 에세이를 2019년 펴내기도 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모일 수 없었으니, 소통이고 뭐고 대책이 없었다. 지난해 2월 강의가 마지막이었다. 모든 강연이 끊겼다. 직감적으로 이런 상황이 오래 갈 것이라 느꼈다.
그 때 그는 주저않고 위시리스트 1순위를 꺼냈다. 그는 "1g의 용기를 더 낸 것이다. 10년 뒤 실행할 계획이었는데 단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앞당긴 것이었다"고 했다.

고정 수익 확보를 위해 책방 이용 회원을 모집했다. 매달 1만원에 '뭐라도 준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지금은 친숙해진 이슬아 작가가 '뭐라도 쓴다'를 내걸며 구독자를 모았던 것과 비슷하다. 지지하고 동참하는 회원 수십 명이 모였다. 동네책방을 꾸려갈 확신이었다.
지금은 어엿한 동네책방 규모를 넘어선다. 500권의 중고책으로 문을 연 책방은 1년 남짓 지난 지금, 눈대중으로도 3천 권이 훌쩍 넘는 책을 확보했다. 신간도 적잖다. 출간된 지 한 달이 안 되는 베스트셀러도 여럿이다. 그의 딸 전다정 씨가 큐레이션을 맡는다.
뭐니 뭐니 해도 동네책방의 근간은 독서모임이다. 문 씨는 '일상의 작가'라는 독서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강영숙 작가의 소설 '라이팅클럽'이 겹친다. 딸 다정 씨도 '2030 청년독서모임'을 병행한다. 인문고전과 문학작품 읽기, 자기계발 교양서적 읽기, 철학서적 읽기 등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꾸려가는 모임도 있다.
헌책을 팔지만 정가의 50% 이하로 판다. 수익금의 5%는 지역아동센터 후원금으로 낸다고 했다. 누군가 책을 기부하면 교환쿠폰을 준다고 강조했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책이 함부로 버려지는 걸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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