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병 수필가
많은 이들이 수필은 체험에서부터 풀어나간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몸이 모음의 준말이 아니던가. 거기엔 눈에 보이지 않는 맘이나 느낌도 모았다. 따라서 육신의 체험 못지않게 생각이나 느낌을 전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필을 흔히 문장의 문학이라 한다. 문장과 문장은 상호 관련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공간의 변화, 인과관계, 서술대상 등의 전개에 따른 단락의 연결도 긴밀성이 유지되어야 작가 의도가 명확히 전달된다.
"그 저녁은 경계에 걸린다. 낮의 끝과 밤의 시작 사이. 낮이라 하기에도 그렇고 밤이라 하기에 어정쩡한 시간. 차를 마시기엔 늦고 술을 마시기엔 이르다. 무엇을 시작하기엔 좀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아까운 인생의 절반을 지난 시점 같다. '아직도'와 '벌써'에서 망설이는 애매한 시간. 미적거리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되고 만다. 인생이란 것이 모두 그러하듯." (최지안, '비로소 나는 누군가의 저녁이 되었다' 서두)
여덟 단락으로 구성된 이 수필의 특징은 단락의 첫 문장을 연역적 주제문으로 시작하고 뒷받침 문장으로 전개해 나간다. 문장 간의 연결이 촘촘히 엮여 있으면서도 독자의 감성을 일깨운다. 눈과 귀에 의존한 글이 아니다.
사유로 글을 전개하다 보면 독자를 훈계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수필은 시행착오에서 얻는 깨달음의 발견으로 작가 자신의 성찰은 물론 독자에게도 안도와 위안을 도모해야 한다. 작가는 관찰자인 동시에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진영 논리니 적폐 청산이니 시끌시끌한 이 즈음, 이상하게 내 주변에 외눈박이들이 늘고 있다. 정확히는 광어처럼 왼쪽으로 치우쳐 있거나 도다리처럼 오른쪽으로 몰려 있어 두눈박이이지만, 한쪽만 보는 편향을 가진 부류이다. 문제는 다들 몸통과 한통속으로 파묻힌 목 때문에 제가 외눈박이인 줄을 모르고 제 시력을 멀쩡하다고 믿고 산다는 것이다. 제 고개 삐딱한 거 모르고 내가 보는 세상,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정상이라고 의심없이 믿고 사는 지금, 여기, 나처럼 말이다." (최민자, '광어와 도다리' 결미)
성향을 달리하는 어느 한 편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광어도 도다리도 정상이다. 목을 돌리지 못해 한쪽으로만 보이는 세상을 의심없이 믿는 '나'를 앞세움으로써 반작용을 잠재웠다.
오래전 읽은 수필의 내용이다. 겨울이 꼬리를 내릴 즈음 지리산에서 간벌작업을 하였다. 주로 생강나무가 솎여 나왔다. 줄기마다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 물을 길어 올려 노란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었다. 본분을 다한 생강나무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으리라.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근로자들이 복직을 촉구하는 시위 현장을 지날 때 기업주의 가족이냐, 근로자 가족이냐에 따라 응원의 방향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 기업의 사주에게도, 근로자에게도 간벌로 희생된 생강나무의 신세는 가슴 짠한 일이다.
생강나무를 보조관념으로, 사람살이 이치를 원관념으로 구성한 이 수필의 메시지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수필은 생각의 거울이다. 생각을 잘 다듬으시라.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이 객관화될 때까지.
장호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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