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 경북대 행정대학원장
나는 586이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서울 강북의 변두리에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무대가 된 지역이다. 그때는 서민의 자식들이 기어오를 사다리가 있었다. 성문종합영어와 실력정석만 이해하면 가재, 붕어, 개구리도 명문대에 진학했다. 당시 법대는 의대보다 인기가 많았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문과 1등은 모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그들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사법시험에 매달렸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약자를 돕기 위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갈아 넣는 사람은 드물다. 인간은 그렇게 이타적이지 않다. 그들도 적당히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이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합격자들은 대체로 판사를 선호했다. 판사 임관 커트라인이 검사보다 높았다. 사법연수원 성적이 낮은 합격자들이 변호사 개업을 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검사가 힘이 있어 보이는데, 커트라인은 판사가 더 높았다. 많은 사람이 선호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누군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검사는 범죄자를 기소할 뿐이지만 판사는 유무죄와 형량을 결정하니 법학도 입장에서는 판사가 더 매력적이다. 그게 다인가.
검사나 판사가 됐던 선후배들 중에서 지금 현직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판사나 검사로 은퇴할 생각이 없다면 왜 처음부터 변호사를 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검사나 판사를 거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리하다는 것은 명예가 있다든지, 권력을 갖는다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다. 명예나 권력에 앞서는 것이 돈이다.
우리는 검사나 판사 출신 변호사에 대한 전관예우(前官禮遇)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범죄자를 기소하거나 판결을 내린 경험이 있는 변호사가 유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자연스럽다. 실제로 전관이 유능하지 않아도 의뢰인이 그렇게 믿을 수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니까. 전관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많으면 수임료가 높다. 법률시장에도 수요 공급의 법칙이 작동한다.
지난 4년 동안 유명한 사람들이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서거나 영장실질심사를 받거나 법정의 피고인석에 앉았다. 어떤 사람은 기소되고 어떤 사람은 기소되지 않았다. 범죄가 소명돼도 누구는 영장이 기각됐지만 누구는 영장이 승인됐다. 어떤 사람은 법정에서 구속됐지만 어떤 사람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만약, 당신이 분쟁에 휘말린다면 먼저 검사의 칼날을 피해야 한다. 검사가 당신을 기소할 수 있다(요즘은 경찰도 당신을 기소한다). 일단 기소되면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기소가 되면 그때부터는 판사의 시간이다. 판사는 세 개의 칼을 갖고 있다. 판사가 영장을 승인하면 당신은 구속된다.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것과 풀려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천지차이다. 물론, 당신은 보석을 신청할 수 있다. 보석도 판사가 결정한다. 세 번째 칼은 재판이다. 판사가 유무죄, 형량, 집행유예를 결정한다. 재판에서 판사는 신(神)과 같다.
여기 세 명의 변호사가 있다. A는 '그냥' 변호사다. B는 한 개의 칼을 써본 경험이 있는 변호사다. C는 세 개의 칼을 썼던 변호사다. 당신이 의뢰인이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C다. 그래서 전직 판사에 대한 수임료가 가장 높다. 30여 년 전 법대에 가거나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선후배들은 이 사실을 알았다. 그토록 검사나 판사가 되고 싶어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화천대유 사건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이익을 환수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민간이 너무 많은 이익을 가져갔다는 비판도 있다.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기 마련이다. 나는 화천대유 사건을 전관예우 문제로 본다. 화천대유와 관련된 전직 대법관, 검찰총장, 특별검사, 민정수석의 이름이 언론에 나온다. 이들은 전직 검사와 판사다. 칼을 써본 사람들이다. 화천대유는 빙산의 일각이다. 많은 개발사업에 전관이 개입됐을 것이다. 화천대유가 그 증거다.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은 검사와 판사의 나라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도 대한민국은 검사와 판사의 나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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