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언해태산집요

심 봉사는 왜 갓난아이인 딸 청이를 품에 품고 젖동냥을 다녀야 했을까. '심청전' 완판본에 따르면 심 봉사 부부는 나이 마흔이 되도록 자식이 없다가 명산대찰에 공을 들인 뒤 아기를 가졌고, 곽 씨 부인은 딸을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나서 세상을 떠났다.
해산한 지 초칠일이 못 되어 바깥바람을 많이 쐰 탓에 산후 뒤탈이 났다고 한다. 곽 씨 부인의 경우처럼 조선시대에 출산과 관련해 사망한 여성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자연스러운 임신과 출산이 병은 아니다. 하지만 산모 당사자에게 임신과 출산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때로는 위험하거나 두렵기도 한 일이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산부인과를 다니며 관리를 하고 인터넷에 의학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도 그러한데, 의료 시설이나 의학 지식이 부족했던 조선시대에는 오죽했을까 싶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지식을 담은 의서가 얼마나 요긴했을지 짐작이 된다.
영남대 도서관에는 목판본 '언해태산집요'가 소장돼 있다. '언해태산집요'는 임신과 출산 전반에 대한 의학 지식과 처방을 담고 있는 산부인과 분야의 의서이다. 1608년 어의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고 내의원에서 1권 1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제목 때문에 '태산집요'의 언해본일 것이라 추정했지만, '태산집요'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 두 책의 관계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 '태산집요'의 영본이 발견되었고, 두 책을 비교한 연구에 의하면 '언해태산집요'는 '태산집요'를 언해한 것이 아니라 허준이 새롭게 편찬한 별개의 책이라고 한다.
'언해태산집요'에는 ▷임신이 잘 되게 하는 방법 ▷갓난아이의 급한 병을 구완하는 법 ▷그 사이에 임신 확인하는 법 ▷임신부의 몸 관리 방법 ▷해산을 안전하게 하는 법 ▷여러 가지 난산과 그 해결 방법 ▷임신부의 질병 및 산후 증상 ▷그에 대한 처방 등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한문 원문과 함께 언해문을 수록해 의원 뿐 아니라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부녀자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성별을 확인하는 방법이나 딸을 아들로 바꾸는 약과 방술 등 일부 항목은 오늘날 의학 상식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런 대목들을 통해 당대인들의 의식을 살펴볼 수 있기에 이것 또한 흥미롭다. 우리 자연에서 나는 약재들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은 생태의학의 흐름에도 부합한다. 또한 '언해태산집요'는 치료제로 쓰이는 동식물이나 광물의 이름, 병의 증상 등 17세기 국어 어휘를 풍부하게 담고 있어 국어학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책이다.
tvN에서 방영 중인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산부인과 양석형 교수가 조산으로 아기를 잃은 산모에게 다음과 같은 위로의 메모를 전했다. "산과 교과서의 첫 장에 이런 글이 있네요.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환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양석형 교수의 마음과 '언해태산집요'를 저술한 허준의 마음이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19로 의료 현장에서 밤낮없이 애쓰시는 의료인들에게서 그 마음을 본다.
박은정 교양학부 교수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