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담과 담쟁이와 고양이

입력 2021-09-18 06:30:00 수정 2021-10-18 12:06:22

임창아 글/ 손정민·조예진 그림/ 고래책빵/ 2020년

담장과 꽃
담장과 꽃

세상에서 가장 행복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마음 밭에 씨앗을 심고 꿈을 꾸며 가꾸는 일이 진정한 행복이다. 다른 사람과는 나의 꿈과 행복을 나누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고독을 느끼고 외로워하기 때문이다.

임창아 시인의 동시집 '담과 담쟁이와 고양이'를 읽으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쓴 동시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사랑하고 거기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바라볼 수 있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동시를 썼기 때문이다.

라면을 사랑했던 컵은/ 라면이 떠나자// 빼빼 마른 수선화를 사랑하였습니다./ 칫솔과 치약을 사랑하였습니다/ 연필과 볼펜과 칼도 사랑하였습니다.// 컵은 혼자 지내는 게 싫어서/ 친구들 불러 함께 지냅니다// 이게 다 첫사랑 라면을 잊지 못해서입니다.('컵라면' 전문)

생명은 탄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추구하고 행동으로 실행했을 때 존재의 가치를 느끼고 인정받는다. 컵라면은 일회용으로 탄생해 소멸하는 존재로 세상에 나왔으나 운명을 거부하고 개척한다. 자신은 쓸모있고 가치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지속적인 사랑을 추구한다. 그러면서도 깊은 내면에서는 첫사랑의 라면을 그리워한다.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지 않고, 자신을 재탄생시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지 못하고/ 하늘만 뱅뱅 돈다// 관제탑에서는/ 아, 아,/ 착륙하라! 착륙하라! 착륙하라!// 비행기도 착륙하고 싶지만/ 기상 상황 나빠/ 그러는 건데// 무조건 착륙하라고만 하니/ 공중에서 뱅뱅 맴돌 수밖에.('비행청소년' 전문)

담장과 꽃
담장과 꽃

똑같은 상황에 마주하더라도 각각의 성격, 사고방식, 환경에 따라 행동이나 판단을 완전히 다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위협을 받을 때는 그것을 극복해 내기보다 일탈이란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다. 원래의 궤도로 돌아가고 싶어도 자신에 대한 사랑까지 잃은 사람이 가려진 시야로 길을 찾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우리의 판단과 시선으로 자리를 마련하고 착륙하라고 요구한다. 상대방의 '기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요구는 상대를 더욱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한다. 이 시에서 말하는 '비행청소년'은 청소년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가끔 눈이 손바닥에 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눈이 얼굴에 붙어있어 앞은 잘 살펴볼 수 있어도 자신은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이 아니라 내 눈으로 나 자신을 본다면 더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앞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눈, 코, 입과는 달리 귀는 왜 옆에 있는지 묻는 '왜?'라는 동시가 유독 마음에 들어왔다.

최중녀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