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입력 2021-09-11 06:30:00 수정 2021-09-11 12:42:37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 요나스 요나손 지음·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이르마 스턴의 그림
이르마 스턴의 그림 '영원한 아이' 모사화. 열린책들 제공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 요나스 요나손 지음·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 요나스 요나손 지음·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누군가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법을 어기지 않고 복수할 필요가 있으십니까? 우리가 해결해 드립니다!"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가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등 4편의 소설로 전 세계에 1천60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작가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제목에서 예상했겠지만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는 유럽 최고의 광고맨을 자부하는 후고 함린이 만든 스타트업 회사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자신의 이웃을 상대로 정의구현에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콘셉트로서의 복수, 비즈니스 모델로서 복수인 것이다. 창조경제가 따로 없다. 우리나라에 이런 회사가 있다면 층간소음의 복수심에 불타는 장삼이사들의 폭풍 의뢰를 받을 것이다. 인지상정인지 스웨덴과 그 주변 국가 주민들도 알음알음 복수 의뢰에 나선다.

교사 시절 자신이 체벌을 가했음에도, 그 학생이 그때 기억을 잊지 않고 이웃으로 이사 와서 자신을 괴롭힌다며 복수해달라는 퇴직 교사의 의뢰, 아이를 징계한 축구팀 코치를 벼르는 학부모의 의뢰를 말끔히 처리해준다. 물론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다.

그러나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의 CEO 후고는 합법성의 정도가 고객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는다. 합법성이란 효율성은 떨어지고 비용이 많이 드는 원칙이었다. 고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법이 어떻게 되어 있든 그리고 자신이 전에 얼마나 고통을 겪었든, 수임료와 데미지가 동등하기를 원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먹은 만큼의 엿을 먹이는 게 합리적 복수의 수순이었다.

소설
소설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의 저자 요나스 요나손. (C) Anna-Lena Ahlström

그러던 어느 날, 케빈과 옌느 커플이 찾아온다. 가난한 커플인 이들은 미술품 거래인인 빅토르 알데르헤임에게 빈털터리로 쫓겨난 터였다. 이 커플은 복수를 요청하지만 돈이 없다. 대신 무급보조원으로 일하겠다며 합류한다.

소설의 근간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소재는 미술품이다. 특히 이르마 스턴의 작품 두 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여성화가 이르마 스턴(1894~1966)은 표현주의 미술의 숨겨진 거장으로 꼽히며 미술사에서도 굵직하게 언급되는 인물이다.

소설을 들었다 놨다 하는 미술품인 '양산을 쓴 여자', '시냇가의 소년' 등은 실제로 이르마 스턴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그려낸 작품이다. 자칫 소설을 읽다가 이르마 스턴의 그림에 빠져버리는 수가 생기는데 구글링을 하면 1천 점이 넘는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조연처럼 등장하는 그림들도 모른 척 넘기기 힘들다. 케빈과 옌뉘가 공통의 호감을 보인 작품인 마티스의 '붉은 색의 조화', 옌뉘가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사무실에 모조품으로 붙여둔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의 '여자의 머리'가 그런 작품들이다.

스웨덴 표현주의 대표 작가인 시그리드 예르텐의
스웨덴 표현주의 대표 작가인 시그리드 예르텐의 'View of Slussen'. 소설 속에서 가볍게 등장한다. (C)Osama SM Amin FRCP(Glasg)

출판사인 '열린책들'도 이런 점에 착안했는지 소설 속에 컬러프린팅된 그녀의 작품 석 점(1942년작 정물, 1916년작 영원한 아이, 1927년작 과일 나르는 사람들)을 수록해뒀다. 컬러프린팅 덕에 오랜만에 책을 펼쳐보더라도 그림부터 보이는 구조다.

다시 소설 속 내용으로 넘어오자. 어쨌든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는 직원 커플의 의뢰를 가짜 미술품 조작 사건으로 엮어 복수하려 하지만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특히 케냐에서 온 케빈의 양아버지 올레 음바티안이 벌인, 문화적 차이에 따른 좌충우돌 연쇄적 사고(事故)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신공에 필적하는 올레 음바티안의 곤봉 던지기 능력 탓에 미술품 거래인 빅토르는 중상해를 입는다.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직원들은 결과적으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된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 등을 아귀에 착착 맞게 진행시켜 나간다. 이후 해피엔딩으로 치닫는 결말은 끝까지 읽어낸 독자의 차지다.

스웨덴의 대표 식품이라 불리는 카비아르 튜브.
스웨덴의 대표 식품이라 불리는 카비아르 튜브.

문화적 차이로 걸핏하면 구치소에 들어가는 올레 음바티안 덕에 북유럽 복지국가는 구치소의 아침식사도 남다르다는 걸 소설에서 배운다. 시리얼과 우유에다 링곤베리 잼, 칼레스 카비아르 튜브에서 짜낸 생선알, 삶은 달걀이 들어간 샌드위치. 각국의 교정당국 식사도 검색해본다. 두꺼운 책을 읽어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소개된 그림과 음식을 검색해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소설이다.

작가는 이웃과 갈등을 빚고 있는 친구에게 복수 계획을 짜주다가 소설의 개요를 짰다고 한다. 복수가 지닌 창의적 잠재력에 주목했다는 것이었다. 524쪽, 1만5천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