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시인입니다. 잠재된 그런 감성을 깨우려면 첫째, 틈틈이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해요. 일상 접하는 사물이나 대상을 세심히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생활태도가 필요해요. 어떤 시상이 와 닿을 땐 언제 어디서나 메모를 하지요. 구체적 사실 없이 생각에만 의존하면 추상적인 시가 돼버려요. 그리고 언어의 전이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시상의 폭을 넓히는 것도 참 중요해요.
둘째, 좋은 시를 많이 읽고, 그 시를 베껴봅니다. 내가 쓴다는 느낌 들지요. 그 시인의 상상력과 감수성, 낯설게 하거나 비트는 기법 등을 익히는데 도움이 돼요. 이를 통해 시인은 감각이나 현상 너머의 이면적 진실을 포착하고, 나아가 자기만의 시작법을 터득하게 되지요. 이 모두가 부단히 길들여야 하는 시인의 몫입니다.
셋째, 왜 나는 시를 쓰는가를 골똘히 생각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여기, 지금,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방편의 일환으로 시 쓰기를 해요. 모든 사물과 대상을 나로 인식함으로써 이 세상 존재하는 것들은 다 나 아닌 게 없지요. 나의 시편 기저엔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어요. 시상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땐 나를 데리고 산이나 공원에 가서 종종 걷습니다. 그렇게 받아 적은 시 한 편 볼까요.
섣달 그믐밤 연탄 한 장 피워놓고 /골방에 누워 감 홍시 하나 물컹 삼켰더니 /고놈의 씨가 목구멍에 걸려 /넘기지도 토하지도 못하고 /밤새 끙끙거리다 시가 되어버렸다 /것도 모르고 날로 꼴깍 삼킨 시 /명치에 딱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고놈의 시를 살려봐야겠다고 /용을 쓰고 있는데 /새벽녘 안도현 씨가 씨익 웃으며 찾아와 /감이 익으면 /삼킬 것도 토할 것도 없이 /다 시가 된다고 그러지 뭔가 /씨가 시가 되는 건 감이라고 /죽은 시를 살리는 것도 감 /날로 삼킨 시를 푹 삭히는 것도 감 /뭣이 죽은 듯 살아 있는 감이라고 /설날 아침 /제상 맨 앞줄 터줏대감처럼 앉아 절 받는 감 /씨가 그랬다 /너의 고조모는 성주 이씨, 증조모는 장수 황씨, 조모는 인천 채씨 /씨가 뭔 줄도 모르고 시집와서 그냥 씨 뿌리고 산 것도 감이라고 /지방문에 걸렸다, 그게 다 시가 되어 /불씨처럼 화끈 달아오르면 /감은 요리조리 데치고 볶고 삶고 /그걸, 다 우려낸 게 시 아니 씨라고 그러지 뭔가 /앗!
(김욱진 詩, '씨/시, 앗!)
이 시는 한 편의 시를 빚는 과정이 한 눈에 선하게 와 닿지요(구체적 묘사). 밤중에 감 홍시 하나 물컹 삼키다 감 씨가 목에 걸려 시가 되어버렸다는 기발한 착상입니다. '씨가 시가 되는 건 감'이라고, 시인 안도현 씨의 말을 빌려온 것처럼 능청떨고 있어요. 먹는 감과 느끼는 감 사이를 오가며 시상을 풀어가고 있지요(언어의 전이성). 이러한 씨-시의 상상력은 다시 씨로 번져 성씨 나아가 불씨로 엉겨 붙습니다. 그 감을 다 우려낸 게 시 아니 씨라고, 시인은 큰스님 법상 주장자 내려치듯 앗! 하고 외칩니다(공감각적 이미지).

김욱진 시인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