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내 아이…" 출생신고 어렵기만 한 미혼부

입력 2021-09-05 17:49:25 수정 2021-09-05 19: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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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미혼부 출생신고 돕는 법 개정에도 여전히 모(母) 부재 증명 어려워
출생신고 늦어지면서 아이들 예방접종도 못하고 학교도 못 다니는 등 인권침해
아이 지켜라다 아빠들이 오히려 범죄자 되기도, 법원 절차와 아이 기본권 분리돼야

대구 북구의 한 여성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사진은 본문과 관련없음.매일신문DB
대구 북구의 한 여성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사진은 본문과 관련없음.매일신문DB

"제 아이가 버젓이 옆에 있음에도 서류상에는 이 세상에 없는 아이였어요…"

태어난 지 7개월 된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미혼부 김모(30) 씨는 올 2월 동거인이 출산 후 이틀 만에 아이를 못 키우겠다며 집을 떠나 홀로 아이를 키워야했다. 당장 출생신고부터 급했지만 아빠인 김 씨가 할 수는 없었다. 혼인관계증명서가 필요했지만 동거인이 동의를 하지 않았다. 김 씨는 어렵게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겨우 아이의 출생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5년 전 미혼부의 출생신고를 돕는 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미혼부들이 출생신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출생신고를 위해 확인돼야하는 모(母)의 부재가 좀처럼 인정받기 어려워서다.

◆'모의 부재' 증명 어려워 출생 신고 못해

그동안 혼인 외 출생자의 출생신고는 모(어머니)가 해야 된다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로 미혼부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막막함을 겪어야 했다. 이에 지난 2015년 가족관계등록법(일명 사랑이법)이 개정되면서 모의 소재불명 또는 모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을 알 수 없는 경우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고 부(아버지)가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게 되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법 개정에도 여전히 미혼부들의 출생 신고는 어렵기만 하다. 모의 부재를 증명해야해서다. 동거인의 이름은 알고 있다는 이유로 모의 부재를 온전히 증명할 수 없다며 소송이 기각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에 미혼부들은 증명서 등 필요 서류를 계속 마련하거나 긴 소송으로 인해 점점 지쳐가는 상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아이에게 임시 부여 되는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제도가 있지만 이 역시 모의 동의가 필요한 출생증명서, 유전자 검사 결과지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출생신고가 늦어지는 사이 아이들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점이다. 길어지는 소송에 출생신고가 되지 못하면서 생후 필수적으로 맞아야할 예방접종을 맞히지 못하는 데다 초등학교입학 때까지 신고를 하지 못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실제 대구에서 거주하는 한 6살 아이가 아직까지 출생 신고를 못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김 씨는 "병원에서 아이 예방접종을 맞히라고 연락이 왔지만 정작 가보면 등록이 되지 않아 접종을 할 수 없다. 결국 한 병원에 사정을 해서 접종비 2배를 주고 겨우 주사를 맞혔다"며 "소송 기각으로 아이가 클 때까지 신고를 못하게 되면 어린이집에도 가지 못하고, 아이를 돌본다고 일도 하기 어려워 생활고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라고 했다.

김지환 아빠의 품(한국싱글대디가정지원협회) 대표가 서울에서 출생신고가 어려운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 1인 시위에 나서고 있다. 아빠의 품 제공
김지환 아빠의 품(한국싱글대디가정지원협회) 대표가 서울에서 출생신고가 어려운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 1인 시위에 나서고 있다. 아빠의 품 제공

◆도움 받을 기관도 거의 없어

이들을 도와줄 기관 역시 마땅찮다. 각 구청 등 지자체에서 미혼부 출생신고 절차를 안내하고 있지만 담당자들이 해당 절차를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은 데다 형식적인 안내 절차에만 그친다는 게 대다수 미혼부들의 설명이다.

미혼모부자가정 초기지원사업 거점기관인 대구 서구건강가정다문화센터 또는 사랑이법 제정을 이끈 김지환 '아빠의 품(한국싱글대디가정지원협회)' 대표 등 민간단체가 미혼부 출생신고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구에는 총 314명의 미혼부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지만, 자녀의 출생신고를 여부는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지환 아빠의 품 대표는 "엄연히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국민임에도 재판을 통해서 존재를 인정 받아야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아빠와 엄마의 상황을 따지는 법원에선 정아이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부모의 부속물로 본다. 아이에게 기본권을 먼저 확보해주고 재판을 진행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소송이 오래 걸리면 아빠들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예방접종이나 기본적인 생활을 하게 해주기 위해선 아이를 유기해야 상황에 내몰린다. 유기가 되어야지만 양육시설 등으로 옮겨져 주민등록번호를 받을 수 있다. 또 오랜 소송으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의지력도 약해질 수 있다. 아이의 인권을 우선순위로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