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읽는스포츠] 뿌리 깊은 성적 지상주의가 품은 스포츠 폭력

입력 2021-09-05 06:00:00 수정 2021-09-05 07: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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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지역 실업팀 이어 학교 운동부서도 폭력 사태…지도자 포상금제가 폭력 부르나

예천중 양궁부에서 벌어진 화살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상처 모습(우측 상단).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캡처
예천중 양궁부에서 벌어진 화살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상처 모습(우측 상단).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캡처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초등학교 다닐 때 체격이 좋거나 달리기를 잘했다면 교기로 지정된 운동부 가입을 한 번쯤 권유받았을 것이다. 엘리트 체육으로 불리는 운동부 가입은 자신 의지보다는 부모, 체육 교사·코치의 권유로 대부분 이뤄진다.

이렇게 시작한 운동부 생활은 훈련과 대회 출전을 위해 '합숙'이란 단체 생활로 이어지기에 군대와 같은 선후배 위계질서가 있는 규율 문화를 강조한다. 운동부는 기존의 운영 시스템적으로 폭력성을 안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내 체육계에서 당연시하는 '성적 지상주의'는 운동부의 폭력성을 부채질했다. 지도자와 고학년 선임 선수들의 이해관계는 성적을 내야 한다는 것에서 잘 맞아떨어졌다. 교사나 지도자는 승진 등 더 나은 대우를 위해 선수들을 다그쳐 성적 올리기에 골몰하고, 고학력 선수들은 진학을 위해 후배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 개인적인 목적 달성이 분명하지만, 팀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항상 앞선다.

경상북도 체육계에서 유독 스포츠 폭력과 관련한 사건·사고가 많이 터지는데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상북도체육회가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 폭력 사태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경북 예천중학교 양궁부에서 벌어진 학교폭력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4일 예천중 양궁부에서 선배가 쏜 화살에 후배 학생이 다친 사실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가해 학생에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이 잇따르고, 해당 운동부 코치의 상습 폭행 등에 대한 증언까지 나오면서 경찰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경상북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활을 쏜 가해 학생으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한 학생은 모두 7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활로 인해 상처를 입은 학생을 비롯해 양궁부 다른 학생 4명, 1년 전 양궁을 그만둔 학생, 초등부 당시 폭행을 당한 뒤 전학한 학생 등이다.

예천교육지원청은 지난달 27일 가해 학생에 대해 선도조치 처분을 내렸지만, 그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피해 학생들이 추가로 나옴에 따라 학교폭력심의회를 다시 열 예정이다. 피해를 호소한 학생들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가해 학생에 대한 선도조치 처분은 더욱 무거워질 수 있다.

교육 당국 조사에서는 해당 양궁부 코치에게 폭언 등을 당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교육 당국은 추가 피해에 대한 진상 조사와 함께 해당 코치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예천중은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2관왕 김제덕 선수의 모교라 이번 사태는 더 관심을 끌고 있다. 해당 학교 등 예천 지역 사회에서는 김제덕 선수의 금메달 획득으로 조성된 올림픽 축제 분위기와 양궁부 해체 우려 등을 이유로 이번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

예천중 양궁부 사태는 학부모 반발로 알려졌지만 사실 운동부에서 빚어지는 폭력 행위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진행형이다. 뉴스가 되지 않고 합의 명목으로 묻힌 사건은 숱하다. 스포츠 스타를 꿈꾸며 운동부에 들어갔다가 폭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은 학생들도 많다.

성적을 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따른 지도자와 선배 학생의 폭언을 포함한 폭력 행위는 비일비재하다. 단체 생활에 따른 질서를 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폭력 행위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운동부 관계자들은 이를 묵인한다.

경북체육회와 경북도교육청이 전국체육대회와 전국소년체육대회 성적을 내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지도자 포상제가 운동부 폭력 행위를 조장하는 게 아닌지도 짚어봐야 할 것이다. 지도자 포상제는 경북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고 각종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경북의 지도자들이 받는 포상금은 다른 시도에 비해 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지도자들은 체전에서 선수들이 수확한 메달에 따라 지급하는 포상금으로 1천만원 이상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다.

연봉 등 대우가 열악한 지도자들은 포상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훈련과 선수 관리에 신경을 쓰게 된다. 일부의 잘못된 사례이지만 최숙현 선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지도자와 선배 선수의 폭력 행위를 들여다보면 포상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제덕 선수와 같은 올림픽 스타가 훌륭한 능력을 갖춘 지도자 덕분에 탄생한 점을 고려하면 지도자 포상제는 바람직하다. 이 제도가 딜레마에 빠지지 않도록 더는 스포츠 폭력 사태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학교 운동부가 줄어들고 스포츠클럽을 통해 운동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이 늘어나는 만큼 스포츠 폭력 사태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