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지요. 좋은 시인가 아닌가에 대한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니까요. 그러나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널리 읽혀지는 시가 좋은 시 아닐까요.
좋은 시는 첫째, 시인 자신이 맞닥뜨린 삶의 체험을 진솔하게 우려내요. 그런 시를 통해 독자들은 삶의 고통을 위로받고, 사물이나 현상을 새롭게 인식하거나 발견할 수도 있고요. 삶의 기쁨을 느끼거나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둘째, 시인은 '여기, 지금,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항상 화두처럼 던져야 해요.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본질을 깊게 들여다보지 못하고는 겉도는 얘기만 늘어놓는 말잔치에 그치기 쉽지요. 그 무엇에도 흉내내지 않은 나만의 시가 감동과 공감을 줄 뿐 아니라, 쉽게 읽히고 웅숭깊게 와 닿지요.
셋째, 시인 자신에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나 속에는 또 다른 나가 무수히 많지요. 새가 날아들면 새가 시를 쓰고, 나무가 흔들리면 나무가 시를 쓰고, 꽃이 피면 꽃이 시를 쓰지요. 나는 그냥 그들이 하는 말 받아 적기만 해요. 시라는 산의 능선을 천천히 걸어갈 때, 마음만은 무심하고 순수해야지요. 그러면 진솔한 시상들이 구체적으로 떠오릅니다. 시는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그걸 고대로 받아 적는 거니까요. 눈에 보이지 않았거나, 나도 모르게 감춰놓았던 것들을 다시 찾는 데서 시작됩니다. 시는 자신의 내부에서 구해야 해요. 바깥세상 떠도는 말들에 속지 않고 오롯 진정한 나의 말 받아 적은 시가 좋은 시지요. 그런 시 한 편 볼까요.
못 둑 몇 바퀴 돌다 /바퀴 빠진 자동차처럼 기우뚱 멈춰 서서 /얼음판 위 까치 한 마리 보았네 /두 다리 꼿꼿이 세우고 /설경을 성경처럼 읽고 서있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그 아래엔 /핼쑥한 초승 낮달 멋쩍게 떠 있고 /살얼음 녹은 물 섶엔 /텃새부리는 물오리 떼 간간이 오갈 뿐 /정적이 감도는 성당 /못 박혀 죽은 예수 부활이라도 한 듯 /외마디 까치 울음소리 울려 퍼지네 /하루 해 불그스레 얼비치는 저녁 답 /둥지를 찾다 /먹잇감을 구하다 /여기까지 흘러온 눈빛, 눈빛들 /둑가 죽 둘러앉아 /제 그림자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네 /까치 미사 후끈 달아오른 성당 /못 언저리 사방팔방 다 둘러봐도 /성당은 없네 (김욱진 詩, 눈 내린 성당)
이 시편은 '성당못'에서 '예배하는 성당'과 벽에 박힌 '못'을 연상시키는 기발한 발상입니다. 까치처럼 땟거리 구하러 나온 사람들 발걸음이 눈 내린 성당못까지 닿았네요. 시인은 능청스럽게 까치가 성당미사 주관하는 것처럼 설정하고, 설경을 성경구절처럼 읊고 있어요. 성당 죽 둘러앉아 미사 보는 저녁답, 온종일 지친 사람들의 눈빛들이 고대로 와 닿지요. 성당 아닌 못에서 까치설교 듣는 눈 내린 성당못…

김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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