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독서 모임은 '금강경 함께 읽기'였다. 숱하게 들어온 '금강경'이지만 혼자는 도저히 못 읽을 듯하여 동지를 모은 것이다. 다행히 한문에 밝은 선생님을 모시고서 읽기 모임이 이루어졌다. 몇 주 읽어보니 해석이 신선하고 자신감도 생겨 여럿에게 금강경을 권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거절'이었는데 이유는 각양각색이었다.
첫 번째 유형은 분위기가 심각할 것 같다는 추측이었다. 심각하진 않지만 심오하긴 하다고 고쳐주었다. 또 하나의 유형은 지루한 철학 모임일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구마라집(鳩摩羅什) 스님의 번역이 시문학에 가까움을 알려주었다. 소설가 김연수가 즐겨 읽는다고도 덧붙였다. 세 번째 유형은 종교로 빠지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매력적인 고전 작품으로만 접근한다고 정정해주었다. 그러다 의외의 질문을 받았다.
"너… 그러다 머리 깎는 것 아니야?"
너무 황당해서 대답하기를 잊어먹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굳이 여러 번 권할 필요는 없음을 깨달았다. 12주간의 금강경 읽기 모임도 끝이 나고 그 에피소드들도 잊힐 무렵 공교롭게도 정말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게 되었다. '머리 깎는다'라고 할 때의 그런 삭발까지는 아니어도, 미용실 언니가 '정말요?'라고 물어볼 만큼은 자른 것이다.
그저 가벼워지고 싶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무엇이 무거웠던 것일까. 금강경에서 '금강(金剛)'이 벼락처럼 내리쳐 자른다는 의미인 것을 보면 무언가 자연스러운 인과관계 같지만, 그저 시기가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출근이란 걸 하면서부터 머리카락 길이는 항상 '딱 묶일 만큼'이었다. 더 길어지면 목덜미에 닿는 까슬함이 싫었고, 더 짧아지면 머리끈에서 삐져나오니 늘 한정된 길이여야 했다. 서울 생활하느라 어쩌다 명절에만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은 나의 최대 단점으로 변함없는 머리 스타일을 꼽았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누구보다 빠르게 출근길에 오르는 비법은 따로 매만질 필요가 없는 묶음 머리였다.
물론 변화를 꿈꾸긴 했다. 워낙 타고난 머리숱이라 샴푸 후 말릴 때면 한참이나 걸렸다. 매일 머리를 질끈 묶다 보니 간혹 두피가 지끈거릴 때도 있었다. 어쩌다 머리끈이 끊어져 당혹스러운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갑작스레 머리카락을 자르면 주위 사람들이 놀랄 거라는 쓸데없는 걱정마저 짊어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끊어내면서 그런 편견도 끊어낼 수 있어 가벼워진 것만큼은 확실한 듯하다.
더군다나 이제는 직장인이라는 타이틀도 잘라냈으니 더 연연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남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가 아니라 가벼워진 내 머리칼의 무게를 직접 느끼고 관찰할 시간이 주어졌다. 머리카락을 잘라내면서 분명 무언가 함께 사라진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 돋아난, 편하고 자유로운 이 느낌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는 좀 더 음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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