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모든 아이의 주거 권리를 존중해야

입력 2021-08-24 15:23:20 수정 2021-08-24 18:55:56

배주현 사회부 기자

주거 빈곤 아동가구 진영이네 집 거실에 짐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다. 윤정훈 기자
주거 빈곤 아동가구 진영이네 집 거실에 짐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다. 윤정훈 기자

배주현 사회부 기자
배주현 사회부 기자

"제 방이 없는 것 빼고 저는 우리 집이 너무 좋아요."

지난 2개월간 아동 주거빈곤가구를 방문하면서 만난 10명의 아이는 모두 이처럼 말했다. 벽지에는 곰팡이가 슬고, 누수가 심해 접착력이 없어진 천장 타일은 가족들 머리 위로 떨어진다. 구멍 뚫린 부엌의 천장에선 밤마다 바퀴벌레가 나와 몸 위로 올라오고, 환기가 안 돼 탁하고 습한 공기로 아이들 피부엔 두드러기가 올라온다. 아동 주거빈곤가구에서 발견된 공통된 모습이지만 그 속에 사는 아이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지 불편한 거라곤 자신들의 방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기자는 그 모습이 의아했다.

현장 실무진들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처음 마주한 환경이 그들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이유였다. 이들은 바퀴벌레가 몸 위로 올라오고, 물이 새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우리 집'처럼 다른 집도 똑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커 갈수록 아이들 생각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놀러 간 친구 집, 잠시 거주하는 일시보호시설 등에서 '우리 집'과 다른 집을 마주하면서 '우리 집의 모습'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점점 이사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개인 공간을 갖는 게 절실해지는 것이다.

마음도 점차 병이 들어 갔다. 열악한 집에 산다며 손가락질해 대는 친구들의 놀림과 좁은 공간을 서로 차지하려 형제끼리 갈등을 빚으면서다. 취재 당시 쑥스러운 듯 웃기만 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놀림받은 기억을 떠올렸을 때 흘린 눈물, 엄마가 집수리 문제로 집주인과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고 들었던 슬픈 감정이 그 증거였다.

좀처럼 변화는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직접 주거 환경을 바꿀 수 없는 데다 '이사'라는 꿈은 넉넉지 않은 부모 벌이에 금세 사라지기 일쑤였다. 이를 지원하고 도와야 할 대구시의 복지 제도와 정책에도 한계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동'과 '주거'가 붙어 있는 '아동 주거빈곤가구'라는 용어에 대구시 공무원은 복지 담당인지, 주택 담당인지 난감해했다. 주택정책과 주거복지팀과 청소년과 아동복지팀은 서로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며 다른 부서로 일을 떠넘기기 바빴다.

취재 중 만난 한 전문가마저도 아동이 주거빈곤을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동 주거빈곤가구라는 말이 성립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동이 어엿한 정책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기엔 아직까지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계속 방치되고 있다. 집은 가족 간 상호작용을 배우고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울타리인 곳이다. 하지만 주거빈곤 아이들은 울타리 속에서 좁고 열악한 공간이라도 차지하고자 고성을 지르고 삿대질을 한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또다시 '칼'이 돼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을 배운다.

대구시는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기 위한 행보를 걷고 있다. 이미 아동을 위한 각종 정책들이 있다지만 아동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지원과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구의 전체 아동 가구에 대한 면밀하고 꼼꼼한 조사부터 이뤄져 그동안 우리 사회가 보지 못하고 수면 아래에 놓인 아동 가구들의 실태를 낱낱이 밝히고 끄집어내야 한다. 대구에 있는 모든 아동들의 의사와 행위가 존중받아야 아동을 위한 도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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