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수교 29주년을 맞이한 중국 대사의 광폭 행보

입력 2021-08-23 11:19:00 수정 2021-08-23 18:49:41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는 전임 중국 대사들과 확연하게 달랐다. 정치적 편향성이 두드러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고, 야당 유력 대선 후보의 '한미 동맹 강화' 발언을 공개 반박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주한 중국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싱 대사의 동정을 상세하게 올려 놓는 등 중국은 과거와 다른 공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그의 동정은 지난 20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예방, 장남 재헌 씨를 만나 재임 기간 한중 수교를 성사시키는 등 양국 관계를 진전시킨 점에 대해 중국 정부를 대신해서 감사 인사를 했다는 소식이다. 싱 대사의 노 전 대통령 예방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29년 전(1992년) 양국의 전(前) 세대 지도자들의 현명하고 정확한 결정으로 중한 양국이 수교하게 됐다"며 "한중 수교로 한중 관계가 급속하게 발전해 양국과 양국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줬을 뿐 아니라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한중 수교'는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북방외교의 완결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 추진에 당시 장쩌민 전 주석과 막후 최고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이 정치적 결단으로 화답함으로써 성사된 것이다.

한중 수교 기념일인 8월 24일에 앞서 매년 중국 대사가 노 전 대통령을 찾아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은 전임 중국 대사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행보라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상대적으로 베이징에 주재하고 있는 '장하성 주중 대사'가 싱 대사에 버금갈 정도로 활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한중 수교 성사 주역인 장쩌민 전 주석이나 후진타오 전 주석, 혹은 첸지천, 양제츠 전 외교부장 등을 찾아 우리 정부와 우리 국민을 대신해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이 한중 수교 기념일을 맞이한 그의 역할일 것이다.

특히 내년으로 다가온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베이징의 장 대사가 싱 대사보다 적극적으로 마음을 담은 외교적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다.

주한 중국 대사관이 공개하고 있는 중국 대사의 동정을 살펴보면, 총리를 비롯한 우리 정부 고위 인사와 국회의장, 여야 정당 대표는 물론이고 대기업 회장 등을 두루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베이징의 장 대사가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급 고위 인사는 차치하고라도 국무원 장·차관급 인사들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외교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교한 지 29주년이 지났는데도 기운 저울추처럼 서울과 베이징 두 대사관의 엇갈린 풍경이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다.

한중 관계는 수교와 더불어 '우호협력 관계'로 시작, '21세기를 향한 협력동반자 관계',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바 있다. 사드 배치와 더불어 전략적 운운의 한중 관계는 '외교적 수사(修辭)'로 전락했다.

취임한 그해 겨울, 문재인 대통령은 방중했지만 혼밥 등 외교적 결례 논란을 빚으면서 한중 관계는 복원되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북한을 방문했지만 문 대통령의 간곡한 초청에도 끝내 방한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한중 수교를 기념해 한국에서는 요즈음 한중 전문가 포럼 등 여러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다. 싱 대사는 우리 언론에 한중 관계 발전을 축하하는 기고문을 투고하기도 했고 방송에 출연하는 등 '요란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싱 대사의 포럼 축사가 다시 논란을 야기했다. "(양국은) 함께 '중한 운명 공동체'의 생생한 장을 열어가고 있다"는 발언이 문제였다.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한중 관계인데도, '(양국이) 운명 공동체' 운운한 것은 양국 관계를 왜곡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주재국 대사로서는 주제넘은 외교적 '망언'임에도, 포럼에서는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그 발언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2017년 방중해 "양국은 일방의 번영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운명 공동체의 관계"라며 '중국몽(夢)'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잘못된 신호를 준 데 따른 예정된 '참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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