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1980년 여름 한 친지가 학술세미나 참석차 외국에 간다는 말을 듣자 장욱진이 즉석에서 그려 선물한 그림이다. 부채에 그려준 것은 합죽선이 우리나라 전통 공예품이자 어디서든 펼쳐 보일 수 있는 휴대용 미술품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붓이 아니라 매직으로 그렸다. 캔버스에 유화를 그렸던 서양화가인 장욱진의 종이작업 중에 먹과 모필 붓을 사용한 '먹그림'과 굵은 매직펜으로 그린 '매직그림'이 있다. 매직그림은 60대 이후 많이 그렸다.
이 부채 주인이 학자여서 '문방도'로 옛날 선비의 서재에 있음직한 물건을 그린 것이다. "경신(庚申) 욱(旭)"으로 간지와 이름 한 글자를 한자로 써서 그림과 분위기를 맞추었다. 장욱진은 유화에는 서기로 날짜를 표시했고 이름은 영어로 썼다.
나열식으로 그린 물건을 오른쪽부터 보면 주황색 과일이 담긴 백자 주발, 붓 세 자루가 꽂혀 있는 푸른 필통, 윗면과 앞면이 동시에(?) 보이게 그린 고동색 서안, 옛날식의 보라색 안경집과 안경, 푸른색과 검은색 항아리 두 개가 들어있는 사방탁자 등이다. 푸른색은 백자에 청화안료를 전체적으로 바른 청채(靑彩) 백자이고 검은 항아리는 흑유 편병이다. 이 물건들을 원래의 크고 작음에 개의치 않고 부채꼴 화면 크기에 맞춰 나란히 그렸다. 검은 매직으로 윤곽을 그렸고 여러 가지 색으로 그 안을 칠했다. 울퉁불퉁한 부채 면이라 선의 질감도, 형태의 느낌도 살리기 어려워 산뜻한 색채에 신경을 쓴 것 같다.
주문(呪文)처럼 '심플(simple)'이라는 말을 좋아했던 장욱진은 작은 그림을 그렸고, 다작하지 않았으며, 그림 소재도 많지 않다. 해, 달, 산, 나무, 새, 집, 가족, 아이, 개, 닭, 소, 돼지, 호랑이 등이 단골이다. 까치는 1950년대부터 타계하는 1990년 마지막 절필작 까지 줄곧 즐겨 그렸다. 장욱진의 그림에 사방탁자, 서안, 반다지, 소반, 등잔대 등의 목기와 항아리, 필통, 주발 등 도자기가 보이는 것은 "감격의 해방 직후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그야말로 차분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시기였다. 그런 환경 탓도 있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우리나라를 별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나는 새로 생겨난 국립박물관에 취직했다."고 한 박물관 경험에서 나왔다.
장욱진은 박물관에서 우리나라 고미술품을 눈에 익히고 마음으로 배웠다. 한 살 위인 최순우, 다섯 살 아래인 김원용이 직장 동료였다. 이 때 목기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고 주변에 거듭 말했다. 장욱진은 윤광조, 신상호 등 도예가와 협업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장욱진은 조선 목기와 도자의 미학에서 나온 단순한 그림을 그렸고 간결한 인생을 살았다. 그것이 모더니스트인 그의 '심플'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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