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끊기고, 인건비·임차료 폭등…대구 동성로 '폐업 도미노'

입력 2021-08-10 18:27:03 수정 2021-08-10 19:39:35

[르포] 거리두기 여파…생기 잃은 '젊음의 거리'
아카데미극장 거리 ⅓ 폐업, 교동 귀금속 거리도 장기 휴업
집합제한 업종 호프집 업주 "큰맘 먹고 차린 사업, 2년 만에 정리" 털어놔
여행사는 손님·매출 완전히 끊겨 문 걸어잠근 곳 대부분…"절망 속 희망의 날만 고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9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일대 텅빈 상점.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9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일대 텅빈 상점.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대구의 중심 상권이자 '젊음의 거리'로 통하는 동성로가 '폐업 도미노'로 생기를 잃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따른 거리두기 격상에 손님 발길이 끊긴 데다 인건비·임차료마저 오른 결과다.

음식점, 주점, 옷가게 상당수가 간판을 철거한 채 '폐업 임대' 현수막을 내걸었고, 여행사 골목 10곳 중 9곳은 문을 걸어 잠근 채였다.

이날 동성로 일대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손님 밀집을 막는 정부 방역대책이 1년 반이나 이어졌지만 정작 코로나19 확산세는 못 잡고, 방역수칙을 준수한 소상공인만 잡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폐업 도미노

지난 9일 오후 2시 대구 중구 동성로 옛 CGV대구아카데미점 남쪽 160m 거리. 이곳은 과거 '아카데미극장' 시절부터 대구시민들의 동성로 진입로로 통했지만, 이날엔 행인이 뜸하다 못해 한적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이날 돌아본 골목 38개 점포 가운데 12곳이 간판을 떼어낸 채 '임대'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폐업한 업종 상당수는 의류 판매점이었다. 음식점, 화장품 매장 등도 보였다.

이 골목 다님길떡볶이 대표 진동식(50) 씨는 "홀에서 식사하는 손님이 과거의 30% 수준으로 떨어지니 매상이 안 난다. 비대면 추세에 배달 주문이 소폭 늘었지만 배달대행 수수료, 포장용기 비용, 배달 플랫폼 수수료 등을 제하면 마진률이 턱없이 낮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평소라면 오늘 휴점했겠지만 지난주 장사를 너무 못해 하루라도 더 벌려고 나왔다. 곧 9월인데 딸 대학 등록금 마련이 걱정"이라고 했다.

상황은 교동 귀금속거리 일대도 비슷했다. CGV대구한일 맞은편에서 대구역 방면 130m 거리의 의류·귀금속 점포 36곳 가운데 폐업했거나 폐업 예정인 곳이 8곳이나 됐다. 장기 휴업 중인 점포만 대여섯 곳이었다. 파리만 날리는 점포에 점주 혼자 앉아 있던 곳도 많았다.

이곳 한 의류 판매점 입구에는 '폐업정리'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내걸려 있었다. 해당 점포를 20년 간 운영했다는 점주 김모(68) 씨는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해 타격이 크다"며 이달 말 가게를 폐업할 생각으로 재고떨이 중이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세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동성로 일대의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 폐업정리 중인 지금도 하루 손님이 10명이 채 안 된다. 정든 가게지만 더는 버틸 수가 없어 폐업을 결심하게 됐다"며 쓴웃음 지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른 모임 인원 및 영업시간 제한을 적용받는 음식점, 노래방, 주점 경우 타격이 더 컸다.

동성로 로데오 거리에서 수제맥주 전문 호프집을 운영하던 문모(61) 씨는 최근 가게를 팔아 치웠다. 그는 "지난 2019년 보증금까지 4억원가량을 들여 호프집을 오픈했으나, 이듬해부터 이어진 적자 탓에 2년 만에 장사를 접었다. 임대료를 낼 여력이 없으니 보증금도 대부분 날렸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9일 오후 코로나19 사태 등의 여파로 문을 닫은 대구 중구 동성로 상점의 철거된 간판 모습. 아직 새로운 간판을 달지 못하고 뜯긴 상태로 흔적만 남아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9일 오후 코로나19 사태 등의 여파로 문을 닫은 대구 중구 동성로 상점의 철거된 간판 모습. 아직 새로운 간판을 달지 못하고 뜯긴 상태로 흔적만 남아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여행사 없는 여행사 거리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기대가 부풀었던 대구 여행업계도 4차 대유행과 접종 지연에 직격탄을 맞았다.

9일 오후 대구시청 일대 공평네거리 반경 500m. 이곳에 즐비하던 여행사들은 이날 문을 연 곳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여행사는 월요일 영업이 가장 성행한다. 주말 모임 직후 여행에 뜻 모은 이들이 가장 많이 상담하는 때여서다. 그러나 국내외 여행이 발 묶인 지금은 옛 이야기가 됐다.

20여 곳 중 단 2곳만 문을 열었고, 문 닫은 곳 상당수는 우편물이 쌓이거나 가구를 한데 치워놓은 등 장시간 사람 손길을 타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나투어 공식인증예약센터 우방관광여행사를 운영하는 이의정(57) 대표는 "월 매출 1, 2억씩 벌다가 지난해 2월 이후 월 매출이 그야말로 0원 수준이다. 혹시나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상담하려는 고객이 있을까 싶어 한 번도 휴점하지 않았지만, 지출 부담이 커지면서 직원 5명 중 1명만 남겼고 폐업 고민도 상당히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한때, 백신 보급률이 늘고 트래블 버블(방역 우수국끼리 상대 국민의 입국 격리를 면제하는 여행 협정)면 외국 여행도 재개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라 속앓이만 하고 있다. 특히 외국 여행 상당 비중은 가족 여행이 차지하는데, 백신을 맞기 힘든 노인이나 20대 이하 연령대를 감안하면 가족 여행 재개는 요원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그는 "지난해 1~4차 정부 재난지원금을 신청해 한번에 100만원씩 받았으나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임차료, 사무실 운영비, 직원 임금 등 지출할 곳이 많다 보니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신용보증기금, 은행권 담보대출, 카드론 등 1억5천만원 빚을 져서 이미 다 썼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외국 여행이 막히니 소규모 개인 단위 여행은 여행사를 끼지 않고 직접 찾아가는 국내 여행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코로나19 치료제까지 보편화해야 국가별 통제 기준에 따라 단체 여행을 재개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사실상 자포자기 상태다. 절망 속에서도 언젠가 시국이 정상화할 것이라는 희망의 빛줄기를 잡고자 애쓰고 있다. 희망의 날이 어서 왔으면 한다"고 했다.

9일 오후 대구 중구 공평네거리 여행사 밀집 거리 일대.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9일 오후 대구 중구 공평네거리 여행사 밀집 거리 일대.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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