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칭기즈칸…쥴리 벽화와 인도 청바지

입력 2021-08-06 17:46:53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카라코룸. 징기스칸이 몽골제국의 수도로 삼은 도시. 전성기 때 교황청이 보낸 사절단이 올 만큼 지구촌 권력의 중심지였다.
카라코룸. 징기스칸이 몽골제국의 수도로 삼은 도시. 전성기 때 교황청이 보낸 사절단이 올 만큼 지구촌 권력의 중심지였다.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몇 해 전 6월 중순에 찾은 몽골 초원에 비가 내리자 살을 에는 추위가 찾아왔다. 7월 한 달 전후한 50여 일을 제외하면 연중 강추위다.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목축과 사냥으로 부족하니 전쟁과 약탈은 생존의 한 전략이었다고 할까. 악조건에서 길러진 최강의 전사들로 칭기즈칸이 1206년 세운 몽골 제국은 손자 시대 한반도에서 모스크바의 동유럽까지 지배해 인류 역사상 가장 광활한 나라였다.

칭기즈칸이 건설한 수도 카라코룸은 13세기 중반 로마 교황청이 사절단을 보낼 만큼 세계 권력의 중심지였다. 최고 권력자 칭기즈칸은 젊은 시절 메르키트 부족에 아내를 빼앗겼다.

절치부심 1년 뒤 아내 보르테를 찾아왔다. 하지만, 메르키트 부족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칭기즈칸은 두말없이 아내를 받아들여 평생 사랑하고 존중했다. 제국의 황후가 된 보르테는 메르키트 부족에게 얻은 큰아들 주치를 포함해 칭기즈칸과 사이에 아들 3명과 딸 5명을 더 낳았다. 칭기즈칸은 정복지에서 수많은 여성 사이에 자식을 뒀지만, 1226년 죽으면서 황후 보르테가 낳은 4명의 아들에게 제국을 분할했다. 몽골의 4대 칸국이다.

케르치. 크림반도 북단 B.C 5세기 그리스 유적. 징기스칸의 황후 보르테가 적진에서 임신해 낳은 큰아들 주치가 세운 킵차크 칸국의 중심지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였다.
케르치. 크림반도 북단 B.C 5세기 그리스 유적. 징기스칸의 황후 보르테가 적진에서 임신해 낳은 큰아들 주치가 세운 킵차크 칸국의 중심지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였다.

흑해 북부 연안 크림반도는 우리 민족의 운명과도 밀접하다. 1945년 2월 크림반도 남단 얄타에서 미영소 3국 정상이 만나 2차 세계대전 종식 뒤, 한국을 독립시킨다고 확약했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크림반도 북단 케르치는 그리스인이 2천600여 년 전 건설한 도시다.

몇 해 전 7월 찾은 케르치에는 더없이 좋은 기후에 초원의 왕자 스키타이와 그리스 유적이 반겼다.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건설된 몽골 칸국이 보르테가 적대 부족에서 임신해 낳은 큰아들 주치의 킵차크 칸국이다.

주치의 둘째 아들 바투는 몽골의 2차 서방 원정을 주도하며 다뉴브 강변의 아름다운 도시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1241년 유린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기사단을 격파하며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보르테와 칭기즈칸 사이 막내아들 툴루이의 둘째 아들 쿠빌라이는 고려의 항복을 받고, 1279년 송나라를 무너트린 뒤 중국을 손에 넣었다. 툴루이의 셋째 아들 훌라구는 1258년 바그다드의 이슬람 압바스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란을 거점으로 일칸국을 세워 문화 황금기를 일궜다.

13세기 중반-14세기 중반 유라시아 대륙은 팍스 몽골리아(PAX MONGOLIA) 아래 동서 교역과 교류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칭기즈칸이 적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 보르테를 사랑으로 품은 결과다.

징기스칸 초상. 아내 보르테가 적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사랑으로 받아들여 황후로 삼고 3남 5녀를 더 낳았다. 징기스칸과 보르테 사이 후손들이 13세기 몽골을 세계제국으로 만들고 팍스 몽골리아를 구현했다. 카라코룸 박물관
징기스칸 초상. 아내 보르테가 적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사랑으로 받아들여 황후로 삼고 3남 5녀를 더 낳았다. 징기스칸과 보르테 사이 후손들이 13세기 몽골을 세계제국으로 만들고 팍스 몽골리아를 구현했다. 카라코룸 박물관

이와 정반대가 조선의 '환향녀' 사태다. 1636년 1월 30일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여진족 청 태종에게 항복한 뒤 수만 명(강화 협상을 주도한 이조판서 최명길 주장은 50만 명)이 청나라 수도 심양으로 끌려갔다.

속환금을 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환향녀'들이 정조를 잃었다고 '화냥년'으로 비난받으며 가족의 외면과 사회적 천시에 시달리다 청나라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세계 제국 몽골과 조선의 정조 관념 차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 한국의 수도 한복판에 쥴리 벽화가 등장했다. 쥴리라는 여인의 확인되지 않은 남성 관계에 17세기 미국판 주홍글씨 낙인을 찍은 벽화가 여성 인권을 짓밟으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수준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던 7월 30일. 인도에서 안타까운 외신이 날아들었다.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사는 17세 소녀가 청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잔혹하게 살해됐다는 소식이다.

옷 입을 자유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여성 인권이 억압되는 인습 사회를 비난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우리의 여성 인권 수준이 혹시 조선의 환향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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