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승리로 이끈 김연경의 카리스마…선수들 사지로 내몬 김학범 감독의 맞불 공격
스포츠 마니아라면 지난 주말 밤 TV 리모컨을 쥐고 갈등에 빠졌을 것이다. 기자도 지난달 31일 같은 시간대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축구와 야구, 여자배구 중계를 보기 위해 끊임없이 리모컨을 돌렸다.
국내에서 3대 프로스포츠로 인기를 끄는 축구와 야구, 여자배구는 이날 도쿄 올림픽에서 시청률을 놓고 구기 종목 3파전을 벌였다.
닐슨코리아의 시청률 조사에 따르면 3개 종목의 시청률은 대접전이었다. 데이터상으로는 축구(25.5%), 여자배구(25.4%), 야구(24.2%) 순이었다. 여자배구의 중계 시간이 가장 짧았던 점을 고려하면 여자배구의 완승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실전에서도 여자배구는 이겼고, 축구와 야구는 패했다.
KBS(1, 2)와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전체적으로 경기 결과에 따라 4강 진출 여부가 달린 축구를 주로 중계했다. 지상파 3사의 축구 8강 한국-멕시코전 누적 총 시청률은 25.5%다. KBS2가 9.5%로 가장 높았고 MBC가 9.3%, SBS가 6.7%로 집계됐다.
야구 오프닝 라운드 B조 한국과 미국 간 2차전은 중계 채널과 시간이 다소 분산됐다. KBS 시청률은 2TV 중계 때 10.1%로 가장 높았다. 오후 7시부터 7시 50분까지 중계한 SBS는 8.2%, 오후 7시 9분부터 7시 51분까지 중계한 MBC는 5.9%였다.
여자배구 예선 A조 한·일전은 축구와 야구 중계 여파로 온전히 보기는 어려웠고 주로 KBSN스포츠, MBC스포츠플러스, SBS스포츠 등 케이블과 온라인에서 중계됐다. KBS1(오후 9시 41분~10시 9분) 시청률은 12.7%로 매우 높았다. MBC(오후 9시 52분~10시 9분)는 5.7%, SBS (오후 9시 52분~10시 9분)는 7.0%로 집계됐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지만 지상파의 편식 중계는 이번에도 비난받았다. 유일하게 승전고를 울린 여자배구 팬들은 지상파들이 축구 중계에만 열을 올린 탓에 승리의 순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상파들을 향해 과도한 중복·동시편성을 자제해달라고 권고했지만, 이번에도 효과는 없었다는 지적이다.
기자는 이날 축구와 여자배구에 집중했다. 축구는 내일이 없는 단두대 매치(토너먼트)였고, 여자배구는 8강 진출을 결정하는 한·일전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축구는 멕시코에 져 모든 걸 잃었고 여자배구는 일본전 승리로 남은 경기 승패와 상관없이 많은 것을 챙겼다.
겉으로 보면 축구는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 병역 면제라는 무시 못 할 과제를 안고 있었기에 승리가 더 절실했다. 그럼에도 여자배구는 승리했고, 축구는 주저앉았다. 승패를 가른 요인은 무엇일까. 경기 전까지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축구의 승리 확률이 배구보다 더 높았다. 여자배구는 김연경의 '타고난 승부욕'이 카리스마로 작용하면서 승리를 가져왔고, 축구는 김학범 감독의 '지나친 자신감'이 패전의 빌미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한·일전 후 일본 언론은 양 팀 최다인 30점을 퍼부으며 승리를 이끈 김연경의 활약에 주목했다.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김연경을 꼽으며 한국을 뒤흔든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교 폭력 논란의 발단이 된 '김연경의 카리스마'에 대해 조명했다.
일본 5개 스포츠지의 정보를 통합해 제공하는 매체, '더 다이제스트'는 "김연경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한국 배구계의 '여제'로 불린다"며 "그는 이름에 걸맞은 활약으로 일본을 가로막았다"고 했다. 더 다이제스트는 또 "김연경은 한국에서 국민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현역 선수 중 한 명이다. 쾌활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다"며 "그런 김연경의 특출한 인기와 카리스마가 한국을 뒤흔든 일대 소동의 발단이 됐다"고 진단했다.
일본 매체 지적대로 이재영·다영 자매는 흥국생명에서 한솥밥을 먹은 김연경의 카리스마에 대들다 10년 전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대표팀에서 추방당했다. 쌍둥이 자매 피해자들의 폭로는 동생 이다영이 인스타그램에 김연경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듯한 내용의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승부욕이 강한 김연경이 자유분방함으로 경기 외적인 요소에 집착한 이다영을 혼냈고, 그가 반발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불거졌다.
김연경의 승부욕은 이날 한·일전에서 절정에 올랐다. 그는 공격뿐만 아니라 블로킹과 디그 등 수비에서도 강한 집중력으로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의 허슬 플레이에 동료 선수들은 자극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 후 눈물을 펑펑 쏟은 세터 염혜선은 김연경으로부터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라"는 쓴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한·일전 승리로 8강 진출 목표를 달성한 여자배구는 4일 오전 9시 터키와 준결승 진출을 다툰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이 역대 최고 성적인 여자배구는 2012년 런던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4강 진출을 노리지만 8강에 머물더라도 환영받을 일만 남았다.

멕시코에 3대6으로 참패를 당한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패인은 김학범 감독에게 돌아가고 있다. 김 감독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선수들을 감싼 점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올림픽 대표팀은 나이 제한이 도입된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한 경기 최다 실점이라는 굴욕적인 패배로 이번 대회를 끝냈다.
김 감독은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어떤 부분이 문제라기보다는 감독의 문제였다. 제가 대비를 철저히 하지 못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대패의 원인에 대해 "우리가 수비적으로 준비한 게 아니고, 충분히 맞받아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6골을 내줬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 감독은 자책대로 멕시코전에서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전술적으로 엄청난 판단 착오를 했다. 토너먼트 특성상 수비에 안정을 둔 경기 운용이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그는 공격력이 강한 멕시코와 맞불 작전을 폈고 이는 대량실점의 화근으로 작용했다.
김 감독은 올림픽 개막 전부터 수비가 가장 큰 문제임을 알고 있었다. 언론을 통해 수비수 발탁의 어려움을 호소했음에도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중앙 수비수 김민재의 와일드카드 선정 실패는 이번 사태의 불씨로 작용했다. 김 감독이 한국이 치른 4경기 중 2경기에서 작전 실패로 선수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셈이 됐다.
세상 모든 일이 마찬가지이지만 지나침은 치명적인 실수를 불러일으킨다. 사령탑은 선수들의 과도한 승부욕을 제어해야 할 임무를 맡고 있는데 스스로 선수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김 감독의 멕시코전 실수는 앞으로 그의 행보에 큰 짐이 될 전망이다.
한·일전 종료 후 선수들과 뒤엉켜 껑충껑충 원을 그리며 환호한 여자배구 사령탑 라바라니 감독 모습에서 축구도 외국인 감독이었으면 더 좋을 결과를 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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