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단의 천사

입력 2021-07-29 11:37:27 수정 2021-07-29 15:03:03

김태호 수필가

김태호 수필가
김태호 수필가

유월의 짙은 햇살이 적의를 뿜어 대는 어느 토요일이었다. 더위를 피해 자전거를 타고 신천에 나왔다. 느티나무 그늘에 좀 쉬어 가려는데 어디서 기타 반주와 리듬 밴드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이 가 보니 동촌중학교 음악 밴드 동아리 팀이 김광석 거리 야외공연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중 1, 2학년으로 구성된 음악 밴드 동아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이곳에서 공연하는데 오전부터 무대 현장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공휴일이라 많은 관광객이 연습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총지휘를 하는 밴드마스터는 앞을 못 보는 삼십 대가량의 총각 선생님이었다. 같이 온 학생에게 물었더니 그 학교 영어 선생님이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음악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어 선생님이란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가냘픈 청바지 차림의 여학생 두 명이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은 기타리스트이며 총지휘를 맡아 유려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대 앞에서 지휘 선생님의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엎드려 음악을 청취하며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가죽 벨트를 차고 선생님 사진과 명함을 등에 달고 열렬한 팬이 되어 응원하고 있었다. 반려견이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길을 안내하고 같이 숙식을 하며 배우자 역할까지 거뜬히 해내는 것을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가 보다. 비록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기타리스트로 연주단의 지휘를 하는 것을 보고 신이 주신 선물인 것 같아 내 머릿속에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시각장애인이 기타를 치거나 색소폰을 부는 장면을 간혹 본다. 악보도 없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신은 장애를 가진 자에게 그 보상으로 보통 사람들보다 탁월한, 한 가지 재능을 선물로 주는 것 같다.

그뿐인가. 두 팔이 없는 장애인이 발가락에 붓을 끼워 글씨를 쓰는가 하면, 붓을 입에 물고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볼 때면 신이 인간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는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불편할 뿐이지 그 기능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은 공평한 재능을 부여받게 되는가 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장애의 크고 작음에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조금은 장애를 가지고 산다.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쓴다거나 소리가 잘 안 들려 보청기를 끼는 사람들도 장애인에 속한다고 보면 온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많이 먹어 운동 부족으로 비만증에 걸린 사람 또한 장애인으로 취급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지금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공연 준비에 바쁜 동촌중학교 음악 동아리 연주단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특히 앞을 못 보는 밴드마스터 선생님께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나도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선생님 또한 신이 나서 더욱더 열성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비록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이지만 남다른 열정을 다해 노력하는 '교단의 천사'가 오늘따라 우러러 보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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