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경희대 교수
나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정치 참여 혹은 대선 출마에 부정적이었다. 여권의 주장에 동조하는 게 아니라 방송 등에서 먼저 그런 의견을 밝힌 바 있으니 확인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감사원장 임기를 4년으로 명시하고 있다. 법원, 헌재 등과 달리 대통령 소속의 행정부 일원인 감사원의 위치를 고려할 때 특이한 규정이다. 대통령의 임면권을 제한해서라도 감사원 직무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감사원장 임기를 마치는 게 헌법 정신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 더는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정권이 감사원장이나 감사원을 핍박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경우와도 결이 다르다. 검찰총장 직무 정지, 징계 회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 등 노골적인 수사 방해는 국민이 모두 목격한 사실이다. 윤 전 총장에 대한 여론 지지는 그처럼 현 정권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결과이다. 여당 의원들에 의한 압박이 있었지만 그 정도쯤 대수롭지 않다는 결기 없이 정권에 맞서는 감사를 하기는 어렵다. 정부 여당이 최 전 원장 재임 중 진행한 감사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핑계로 사용할 가능성도 우려되는 바였다.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문제는 감사원 감사가 있어 검찰 수사가 가능했던 사안이다. 어렵사리 관련자들 기소가 이뤄지고 이제야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는 마당이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 모두 중도 사퇴 후 대선판에 뛰어들었으니 공격 대상으로 오죽이나 적합하겠는가. 벌써 정치적 의도를 가진 감사와 수사였다는 정치적 선전전이 한창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사안까지도 진영 논리에 따라 집요하게 공격하는 현 정권이다. 법적 절차에 따라 재판이 진행되겠지만 법관이 증거와 법리만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기에 너무나 힘든 상황이 될 게 뻔하다.
어쨌거나 정치인 최재형은 이제 기정 사실이 됐다. 감사원장 사퇴 후 머뭇거림 없이 전격적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하며 정치적 행보를 가속화하는 중이다. 당 바깥의 윤 전 총장과 대비되는 행보로, 야권의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J형'이라는 애칭도 생겼다. 대선 출마 선언 역시 시간문제다. 그렇다면 최 전 원장의 일차적 과제는 분명하다. 헌법 정신 훼손, 명분 부족 등에 대한 일각의 비판과 의구심을 깨끗이 씻어 내는 일이다. 현 정권에 의한 국가의 분열과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지만 그 정도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제헌절 메시지도 원론적이다. 그는 "그동안 통치행위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 밖에서 행사된 경우가 많다"는 비판과 함께 "헌법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법치주의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번 옳은 말이지만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를 강조한 윤 전 총장의 메시지와 대동소이하다. 현 정권에서 본인이 헌법대로 감사원장직을 도저히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자신은 다음 정권 책임자가 되면 대한민국을 어떤 모습의 나라로 어떻게 이끌 것인지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주변의 말을 들어보면 최 전 원장의 인품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중학교 때부터 잘 아는 사이라며 그를 가리켜 인간계의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말하는 지인도 있다. 언론에도 워낙 많이 거론돼 더 이상의 찬사가 필요할까 싶다. 그러나 훌륭한 인품, 파도 파도 미담뿐인 사람과 대한민국을 이끌기에 적합한 대통령 후보와는 차원이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다양한 미담이 소개된 바 있다. 지금도 그의 인품 자체를 폄하하는 의견은 찾기 어렵다. 문 대통령과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과 포용력, 정책적 능력과 성과에 대한 것이다. 최 전 원장은 위에서 지적한 아쉬움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치판에 뛰어 들었을 때는 오랜 고민과 기도 끝에 내린 결정이라 믿고 싶다.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그간의 행보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가볍게 보일 정도의 원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못하고 속된 말로 정치적 불쏘시개로 그친다면 정권 교체 차질은 물론 그간 쌓아온 개인적 신망마저 망가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헌법 정신 운운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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