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입력 2021-07-13 12:53:23

노혜진 오오극장 홍보팀장
노혜진 오오극장 홍보팀장

얼마 전 볼일이 있어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그래도 부산에 왔으니 바다는 봐야하지 않겠냐며, 일일 가이드를 자처하며 나를 바다로 데려갔다. 차를 타고 영도다리를 건너가는데 문득 한 영화가 떠올라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 영도다리 나오는 영화 같이 본 적 있지 않아?"

"맞아. 나도 이 다리 건널 때마다 생각나."

'그래 오오극장에서 봤었지', '제목이 뭐더라', '관객이 세 명뿐이었잖아', '점보는 할머니가 나왔는데 골목 이름이 뭐였지?' 같은 이야기들을 한참 나누다가 생각했다. 이러고도 영화를 봤다고 할 수 있나? 제목도 내용도 희미하고 같이 봤다는 기억만 남아있는데.

기차를 타고 대구로 돌아오면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의 장면들을 분석하고 이해해야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이라고 말한다. 일리 있는 의견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영화를 연구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영화를 본다"는 말의 의미는 좀 더 사소한 기억들의 모음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영화를 누구와 볼지 고르는 일부터 영화를 보러 가는 날의 날씨, 영화관의 분위기, 배우의 이름을 검색해 봤던 기억,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누었던 이야기와 먹었던 음식까지 영화를 둘러싼 모든 경험과 기억들이 모여 영화를 본다는 행위를 완성한다.

프랑스의 미술비평가, 미학자인 장 루이 셰페르는 그의 저서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L'Homme Ordinaire du Cinema)'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관객 각자의 삶과 경험의 일부를 형성하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셰페르는 이를 '영화적 체험'이라고 표현한다. 영화를 관람하는 행위가 개인의 삶과 기억에 깊게 연계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셰페르의 영화적 체험은 시각적인 체험을 비롯한 모든 감각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체험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에는 영화뿐 아니라 여러 가지 이미지와 다양한 시·공간, 수많은 감각이 뒤섞여있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의 매력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간 한 공간에 모여 같은 영화를 보지만 불이 켜지고 영화가 끝나면 우리는 서로 다른 각자의 영화 한 편을 마음에 품고 떠난다. 나만의 영화, 나만의 영화적 체험을 가진 채로 말이다.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았던 나의 예전 영화적 체험은 이제 영도다리와 대구로 오는 기차를 거치면서 쉽게 잊지 못할 나의 새로운 기억으로 재탄생되었다. 나의 영화적 체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참고로 친구와 함께 보았던 영화의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재개통된 화려한 부산 영도다리 밑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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