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x112,1cm Acrylic on Canvas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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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이 작 'Untitled' 112.1x112,1cm Acrylic on Canvas (2021년)
정방형의 캔버스에 온통 연두색이 지배적인 가운데 간간이 초록 계열의 색과 검고 흰색이 점처럼 배어나와 있을 뿐이다. 심지어 제목마저 'Untitled'다. 도대체 이 그림은 무엇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여기서 '그림읽기' 경험의 팁 하나를 짚고 가자. 추상이나 비구상 계열의 그림을 볼 때 그 감상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가장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 비움'은 곧 그림 앞에서 솔직해진다는 말이다. 솔직해지면 마음의 문이 열리고, 문이 열리면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박옥이 작 'Untitled'은 색과 색이 차지한 면, 정방형의 캔버스 공간(엄밀히 말하면 넓이)이라는 세 요소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또한 색은 각각 지닌 색감을 내포한다. 연두색의 경우 가장 먼저 닿는 느낌은 '여림'이다. 그림을 보고 있는 바로 이 시간에 '여림'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 내 삶에서 여림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물론 개인적 삶을 반추한 것들이지만, 부드럽고 연약한 '여림'의 존재가 시간을 거치면서 탄탄하고 대견스러운 존재로 거듭나는 '기적'같은 일이 기억에서 소환됐다. '첫사랑', '젖 빠는 갓난아기', '봄날의 새 이파리'가 그것들이다.
'첫사랑'은 매우 민망하지만 대학시절 겪었던 사랑앓이다. 상대가 날 거들떠보지도 않은 짝사랑을 꼬박 4년간 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내성(耐性)이 생겼고 혹독했던 '장미의 가시'는 더 이상 날 찌르지 못하고 '연민과 인간 존재의 향기'로 순화됐다.
'젖 빠는 갓난아기'는 두 딸을 키우면서 겪었다. 고사리 손이 제 어미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온 힘을 다해 이마에 송알송알 땀을 맺어가며 젖 먹던 모습은 하나의 경이(驚異)였다. 이제는 딸들이 커서 사회구성원이 됐고 그때의 아빠는 두말할 것 없이 '딸 바보'를 자임하고 있다.
'봄날의 새 이파리'는 차를 마시면서 알게 됐다. 곡우 전 딴 일기일창(一旗一槍)의 여린 잎을 우려낸 차 한 잔은 욕망이 분탕질 하는 심성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산사의 승려들에게는 다선일미의 수행으로 이끄는 매개가 되고 있다. 물론 이 세 가지 경험은 모두 삶에서 얻은 '기적'들로 힘든 파고를 넘는 힘을 주었고 스스로 잘고 인색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경계시키는 회초리가 됐다.
박옥이는 묽게 희석한 물감을 수행하듯 수십 번씩 반복하는 붓질로 색채가 캔버스에 스며들게 하여 이 같은 견고한 화면을 구축했다. 작가는 단일 색, 즉 연두색이 지닌 힘을 존중하며 뭔가를 표현하고자 했지만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추상적 조형언어를 통해 '말 없는 웅변', '형태 없는 조형미'를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작가가 쏟아 부은 색채의 섬세함에 몰입하면 된다. 한 점의 그림에 기억을 소환하는 기능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림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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