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뜬금없이 한국 정치판에 소환됐다. 한 야권 인사가 SNS에 "이 정도 막장 정치 공세라면 친구 엄마이자 선생님과 결혼한 마크롱은 돌 맞아 죽어야겠네요"라고 썼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의 과거 사생활 의혹과 관련해서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 소식을 들었다면 그야말로 환장할 일이었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지난달 지방 순회 도중 생면부지 시민한테 뺨을 맞고, 그 며칠 뒤 광역 지방선거에선 단 한 곳도 승리하지 못한 터다. 우리말을 안다면 '이 머선 129'가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그는 지난 한국 대선 땐 프랑스 과자 마카롱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원내 의석도 없는 신생 정당의 30대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에 후보마다 한국의 마크롱을 자처했다. 문재인 후보 캠프조차 "국정 운영 경험을 갖춘 준비된 대통령"이라며 애써 공통점을 찾았다.
임기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두 대통령에겐 얼핏 비슷해 보이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전임자들에 비해 상당히 견고한 말년 인기가 그렇다. 둘 다 최근 선거에서 여당의 충격적인 참패에도 40%대 안팎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건 어찌 보면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닮은 점은 여기까지다. 특히 집권 5년 차를 대하는 자세에서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재선이 가능한 중임제와 '중간 평가' 없이 물러나는 단임제 대통령의 차이를 떠나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행위인 정치(政治)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연설에서 "남은 1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느낀다"면서도 구체적 목표나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위기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 남은 과제"라면서도 '발판 마련' '역량 총동원' '최선' 같은 추상명사만 쏟아냈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은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를 던졌다. TV 연설을 통해 핵심 공약인 퇴직연금 개혁을 재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노동계는 "더 늦은 나이까지 일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내년 대선 이후로 논의를 미뤄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연금 개혁은 어느 나라에서든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노동계 지지로 당선된 정권이라면 건드리기조차 두려운 폭탄이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차기 출마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일 수도 있지만 임기 마지막을 쓸모 있게 보내기 위해서"라며 밀어붙일 태세다.
코로나19 대처 행보에서도 대비된다. 가끔 헛발질도 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이동 제한 조치, 보건업계 종사자 백신 접종 의무화 같은 결단도 내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끝이 보인다"고 했다가 이내 "또다시 참고 견뎌내자"고 요청하는 돌림노래만 부르고 있다.
프랑스는 가히 '혁명의 나라'라고 부를 만하다. 1789년 대혁명에 이어 1830년 부르주아 혁명, 1848년 2월 혁명, 1968년 5월 혁명의 깃발 아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심지어 마크롱 대통령의 자서전 제목 역시 '레볼뤼시옹'(révolution)이다.
무시무시한 이 단어는 한국에서도 요즘 부쩍 자주 들린다.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촛불혁명을 완수하겠단다. 그런데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아포리즘과는 달리 지난 4년 동안 내로남불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어 그 목표가 뭔지 자못 궁금하다.
격분하는 성정(性情)만큼은 한국인과 비슷한 프랑스 사람을 두고 '그들이 새로운 리더를 원하는 이유는 그를 빨리 처형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한국도 이론으로나 가능할 것 같았던 탄핵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내년 봄 두 나라는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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