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MB가 돌아왔다?

입력 2021-07-12 06:30:00 수정 2021-07-12 06:33:12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이인영 통일부 장관 (왼쪽),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 (왼쪽),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수는 실은 위기를 맞고 있다. 재보선 압승으로 정권교체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지만, 그 뒤로 대선 승리에 필요한 뚜렷한 비전과 구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밥상을 차려 줘도 스스로 찾아 먹지 못하는 형국이랄까?

어차피 대선은 누가 '시대정신'을 그러잡느냐의 문제. 여야 모두 후보는 풍년이다. 저마다 출마의 변을 쏟아놓으나, 상투어의 만찬일 뿐 어느 하나 귀에 들어오는 게 없다. 그 누구도 국민에게 내놓을 뚜렷한 메시지를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은 무엇으로 고통받는가? 그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런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특히 야당이라면 정권의 실정으로 혼란에 빠진 국민에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이들의 눈길은 과거를 향할 수밖에. 요즘 국민의힘은 요란한 쇄신의 이미지를 앞세워 실은 과거로 가고 있다. 그게 다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에서 빚어진 현상이다. 하긴, 선거에 한 번 이겼다고 없었던 철학이 저절로 생기겠는가.

유승민 후보는 느닷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들고나왔다. 여성가족부는 여성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만들라는 UN의 권고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안다. 일부 남성들의 반여성주의 감정에 편승하려는 생각에서 세계적·문명적 흐름을 거스르는 셈이다.

여가부가 제 역할을 못 해왔다면 역할을 하도록 개선할 일. 문제가 있다고 부서를 없앤다면, 대한민국에 남아 있을 부서가 있겠는가. 국토부도 아니고 하필 여가부를 짚어 폐지하자고 하는 이유가 뭘까? 그 바탕에 깔린 것은 구제불능 마초 근성이다.

이준석 대표는 거기에 통일부 폐지를 얹었다. 내가 올바로 기억한다면 여가부와 통일부 폐지는 MB 정권의 공약이었다. 그 먼 길을 돌고 돌아 국민의힘이 결국 MB 정권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이 퇴행은 미래를 구상하는 상상력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다시 해묵은 '작은 정부론'을 꺼내 들었다. 지금이 대처와 레이건 시절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지금 국민들이 여가부와 통일부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전략적으로도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모든 이들을 한데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정권에 등 돌린 이들마저 남성과 여성으로 갈라치고, 그걸로도 모자라 통일과 반통일로 또 한 번 갈라쳐서 대체 뭐 하자는 것인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느 여론조사에서 20대 여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1%로 나왔다. 충격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에서는 표본수가 적어 신뢰할 수 없다고 하나, 그것을 감안한다 해도 2030 여성의 지지율이 현저히 낮은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게다.

'작은 정부론'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정부의 규모는 적당해야 한다. 작은 정부라고 무조건 좋고, 큰 정부라고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이들이 모두 '작은 정부'를 원하는가? 왜 내부에 불필요한 전선을 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밥상을 다 차려 주지 않았던가. 신정강정책을 그냥 받아만 먹어도 될 터인데, 굳이 그 상을 걷어차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애드리브로 '개드립'을 치는 형국. 문제는 자기들이 이미 과거로 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데에 있다.

토론 배틀로 뽑힌 대변인은 과거에 이미 두 정당에서 대변인을 지낸 인물. 그런데 그 인물을 다시 뽑느라 141대 1의 경쟁을 치러야 했다. 이거야말로 고비용 저효율 정치다. 한 번이니 흥행이라도 하지, 다음에는 아무 관심도 끌지 못할 게다.

이렇게 없는 콘텐츠를 포퓰리즘, 갈라치기, 정치의 예능화로 때우며 MB를 다시 소환한다면, 모처럼 찾아온 정권교체의 기회는 날아가 버릴 것이다. 이제라도 정치의 본령으로 돌아와 지금 국민들이 당하는 고통과 진지하게 대결하라.

※필자의 사정으로 진중권 칼럼은 이번 주까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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