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집 / 손원평 지음 / 창비 펴냄
소설 '아몬드'의 작가 손원평이 첫 소설집 '타인의 집'을 냈다. 작품활동을 시작하던 2017년부터 발표한 단편 8편이 실렸다.
소설은 작가의 경험이 어떻게든 표출돼 행간 속에 묻어나기 마련인데 이 소설집에는 아이가 소재로 등장한다. 작가의 출산과 양육 경험이 혼란스러웠고 뼈저렸다는 고백으로 읽힌다. '4월의 눈'에는 아기를 유산한 후 이혼을 결심한 부부가, '괴물들'에는 쌍둥이 아이가 아버지를 살해할까봐 걱정하는 여성이 나온다.
사회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방식은 세련됐다. 소설집 '타인의 집'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가장 최근(창작과비평 2021 봄호) 발표된 표제작 '타인의 집'이다. 작품의 배경은 쉐어하우스다. 4명이 함께 사는 아파트로 방 셋, 화장실 둘 구조인 것으로 추정된다.
쉐어하우스라지만 자본주의의 속성이 물씬 스며있는, 월세를 낸 만큼 권리를 갖는 곳이다. 4명이 살고 있는데 화장실 하나를 한 사람, 주인공 시연이 독점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살았던 방이지만 어차피 고향에 가서 그랬고, 지구 자체가 거대한 공동묘지이며 삶은 그 위를 끊임없이 순환해 생겨난 결과일 뿐이라 정신승리하면서 그 방에 입주한 것이었다.
그래도 용변은 급하며 내밀한 것이어서 화장실 좀 나눠쓰자는 간청을 받게 되는데 "정말 미안한데 미안하지만 미안하고 싶지 않아요. 미안해요"라는 말로 자신의 권리를 수성하는 냉엄한 곳이 이들의 쉐어하우스다.
그러나 4명의 등장인물이 자본주의 논리 운운하며 살아가는 아파트는 제목 그대로 애초부터 '타인의 집'이었다. 원래 집주인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원래 집주인이 이 집을 매매하려는 순간, 쉐어하우스의 운명도 사실상 끝나는 셈.
이 작품의 주요 메시지를 오롯이 청년층의 비참한 주거 여건을 반영한 것이라 심각하게 단정짓기는 곤란하다. 게임 속 이스터에그처럼 행간에서 튀어나오는 개그코드에 고개 젖혀 웃길 여러 번. 실컷 웃다가 다 보고나서 "쟤들 어떡하니"를 입에 무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한편으로는 독자를 웃기려고 작정하고 쓴 작품이라는 느낌도 드는데 쉐어하우스의 동거인들이 움직이는 소리만 듣고도 상황을 상상해 재연하는 주인공 시연은 현대문학 2004년 6월호 등에 실린 박민규 작가의 '갑을고시원 체류기' 속 주인공과 일면 닮아있다.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게 생활화되었고, 코를 푸는 게 아니라 눌러서 조용히 짜는 습관이 생겼으며, 가스를 배출할 땐 옆으로 돌아누운 다음 - 손으로 둔부의 한 쪽을 힘껏 잡아당겨,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피 쉬" (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 中)
청소년소설이래서 콧방귀 뀌며 읽었더니 어른이 더 재미있어하더라는, BTS가 읽어 한층 더 유명해진, 국내에서만 80만 부 가까이 팔린 손원평의 '아몬드'를 읽고 나면 아몬드 한 주먹쯤은 먹고 싶을 줄 알았는데 새콤한 자두맛 사탕만 떠올린 것과 반대로 '타인의 집'에서는 세입자의 응어리가 뭉칫째 전달된다. (작가는 '타인의 집'이라는 제목은 웬만한 소설과 영화, 심지어 미술작품이나 시에 붙여도 어색함이 없을 만능 치트키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문학이란 무엇인가'(2018년 문예지 악스트에 발표될 당시 제목은 '이것은 아니다'였다.)도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다분하다. '점유이탈 작품 횡령'(친구가 소설을 전해주며 품평을 부탁해놓고 사고로 숨지자 글을 일부 수정해 이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다. 친구가 숨졌기에 아무도 모를 것이라 여겼지만 정작 그 작품은 여고생이 쓴 글이었다.)에 가까운 '표절'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만 작가 양심에 대해 캐묻지 않고 상황만 보여주면서 열린 결말로 끝맺는다.
심지어 표절 작가는 작가로서 자신의 인지도를 확인하러 대형서점에 가서, 혹시나 직원이 자신을 알아볼까 두려워하면서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책의 제목을 알려주고, 직원을 따라 간 곳은 서점 밖 통로에 내놓은 70% 할인코너였다는 상황도 웃프다. 자신의 장편소설을 염가 판매하고 있는 중고판매상에게 모욕감을 느껴 그를 추적해 직접 만나 따지기까지 하는, 이기호 작가의 단편 '최미진은 어디로'의 주인공과 겹친다. (지역 작가들에게 물으니 열이면 열, 모든 작가들은 이런 유혹을 느낀다고 했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나와 남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 그러면 나의 우주가 그렇듯, 타인의 우주 안에도 다양한 작동 원리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며 "문학의 행위가 타인의 집을 평가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행위라면 책의 구실은 분명하다"고 했다. 272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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