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읽는스포츠] 코미디 소리 듣는 한국가스공사와 대구시의 프로농구 연고 협약

입력 2021-07-11 06:00:00

서로 절박함 없는 상태서 첫 단추 잘못 끼워…투명한 전용구장 건립 계획 꼭 필요

지난달 9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한국가스공사 프로농구단 인수 협약식에서 한국가스공사 농구팀의 초대 사령탑을 맡은 유도훈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9일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한국가스공사 프로농구단 인수 협약식에서 한국가스공사 농구팀의 초대 사령탑을 맡은 유도훈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한국가스공사는 지난달 2일 프로농구단 인천 전자랜드를 인수, 2021-2022 시즌부터 리그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9일에는 본사가 있는 대구에서 한국농구연맹(KBL)과 전자랜드 인수 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협약식에 참석하기로 한 권영진 대구시장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날 한국가스공사는 대구시와 연고지 협약을 체결할 계획이었으나 농구 전용구장 신축에 대한 양측 이견으로 대구시장이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한 달이 지나도록 전용구장 건립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는 10월 중 예정된 2021-2022 시즌 개막이 다가오면서 다급해진 측은 한국가스공사와 KBL이다. KBL은 대구시농구협회 등 경기단체와 언론 등을 통해 조속한 연고지 협약 체결을 대구시에 촉구하고 있다. 농구단을 이끌 단장을 선임하고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등 창단 절차를 밟고 있는 한국가스공사는 일단 인천에서 선수단을 소집, 훈련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미리 대구에 집을 구한 일부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인천에 머물 숙소를 따로 구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전자랜드 해체로 연고지를 포기한 인천이 한국가스공사를 유치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코미디 같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프로농구단을 운영하려는 한국가스공사와 대구시의 절박함이다. 먼저 한국가스공사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2014년 대구혁신도시에 자리 잡은 한국가스공사는 대구 지역 사회로부터 각종 기여 요청을 받고 있다. 스포츠만 하더라도 농구, 배구, 하키 등의 팀 창단 구애를 받았다. 현재 한국가스공사는 전국체육대회 대구 대표인 아마추어 태권도팀을 두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애초 태권도에 이은 제2의 스포츠팀을 창단할 의지가 없었다. 프로농구단을 인수한 것은 대구지역 농구인들의 열성과 로비를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구 농구인들은 수년 전부터 정치인 등을 통해 대구시와 한국가스공사를 꾸준히 압박했고, 마침내 대구시 요청에 한국가스공사가 전자랜드 인수 후 창단을 결정했다.

대구시도 마찬가지이다. 대구시는 2011년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스)의 '야반도주'로 프로농구에 대한 시민 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전용구장을 고사하고 프로농구 경기를 할 만한 체육관조차 없는 실정이라 거듭된 농구인들의 요청을 외면했다.

오랜 기간 이 과정을 지켜본 기자는 대구시와 한국가스공사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으로 본다. 전자랜드를 인수하면 창단을 쉽게 할 수 있다는 논리에 전용구장 등 본질적인 문제를 등한시했고, KBL이 성급하게 생색내기를 한 탓에 일이 꼬였다.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역사는 올해 40년째를 맞고 있다. 프로 스포츠가 지역 연고제를 채택하면서 구단과 연고 도시 간에 많은 갈등이 있었고, 일부 구단이 지원 부족을 이유로 연고지를 바꾸는 사례도 여럿 있었다. 프로농구는 비교적 연고지 이전이 많은 종목이다.

대구시는 이미 프로야구 전용구장인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를 건립하면서 인프라의 중요성을 학습했다. 삼성그룹은 야구단의 적자를 이유로 자체 전용구장 건립을 한결같이 외면했다. 대신 언론과 팬들을 부채질해 대구시를 압박했다. 시민들의 원성을 이겨내지 못한 대구시가 야구장 건립 계획을 세웠고 삼성그룹의 일부 지원을 받아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를 건립했다. 삼성그룹의 독립 계열사에서 제일기획의 자회사로 전락한 삼성 라이온즈는 대구 새 야구장에서 돈벌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프로농구단을 유치하려는 대구시의 행보는 조심스럽다. 대구시는 한국가스공사와의 협의에서 구체적인 전용구장 건립 계획을 요구했고 한국가스공사가 건립 장소 등을 놓고 의견을 달리하면서 갈등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일단 대구체육관에서 시즌을 시작한 후 장기적으로 수성구 야구장 인근 개발제한구역 내에 전용구장을 짓겠다며 대구시에 협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동구 혁신도시에 전용구장 부지를 제시하며 구체적인 건립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수성구 지역의 사유지인 개발제한구역을 요구하는 것은 LH 사태에 이은 또 다른 공기업의 땅 투기 행위로 여겨진다. 개발제한구역 해제에 따른 절차상 어려움도 있다. 대구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인이다. 오리온스에 뒤통수를 맞은 아픈 상처가 있기에 대구시는 한국가스공사에 전용구장이란 명확한 운영 의지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프로농구단을 통해 공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대구지역 사회에 보탬이 될 생각이라면 인프라 마련 등 농구단 운영 계획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프로구단이 지자체에 손을 내미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지자체는 자립 운영 의지가 없는 프로구단을 유치해서는 안 된다.

프로농구가 겨울 스포츠로 대구시민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농구 붐 조성을 통한 아마추어 농구 발전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다수 시민은 무관심하다. 미래 스포츠 패러다임과 도시 홍보 측면에서 다른 종목이 더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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