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백화점 본점 52년 만에 잠정 휴점…과거 직원들, 고별 전시회 보며 "마지막 쇼핑, 추억 살리러 와"
"정문이나 남문서 친구들과 만나고 아이쇼핑하던 공간 사라져 아쉬워"
시민들 옛 기억에 마지막 쇼핑 즐겨
박효진 본점 점장 "18년 몸담은 아끼던 점포, 영업 지속하는 프라자점 아껴 달라"
"대구백화점(대백 본점)에서 만나자."
대구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당신은 대구에서 어떤 곳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여러 장소들 가운데 '대백'을 빼놓을 수 없다. 1969년 개점 이후 대백 본점 앞은 오랜 시간 '만남'과 '약속'의 장소로 통했다. 그 시절 "대백에서 만나자"는 말은 관용어나 마찬가지였다.
1일부터는 더 이상 이런 말을 주고받을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대백 본점은 30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개점 52년 만에 잠정 휴점에 들어간다. 폐점, 매각, 업종 전환 등 본점의 운명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 작별 인사
30일 오후 2시 대백 본점 1층 한켠 '대구백화점 77년의 발자취' 전시장. 과거 대백 직원들이 착용했던 유니폼들이 마네킹에 걸려 있었다. 대백상품권·멤버십카드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코너, 대백이 받은 여러 상과 훈장들, 대백의 연혁을 소개하는 연표가 눈에 띄었다. 대백 광고모델 변천사와 그간 배포했던 '바겐세일' 홍보 팸플릿, 종이로 된 대백 쇼핑가방들도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012년부터 이곳 여성복 매장에서 3년가량 근무했다는 홍수임(33), 박선희(30) 씨가 쇼핑가방을 보며 반가워했다. "우리 근무할 때 손님들께 녹색 종이가방 나눠드렸잖아." 두 사람은 본점 영업 마지막날이라는 소식에 작별 인사차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홍 씨는 본점 쇼핑객이 찾던 옷을 프라자점의 같은 매장에서 배송받아 판매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본점과 프라자점을 오가는 승합차가 있었다. 손님이 원하는 색상이나 크기의 옷이 우리 매장에 없을 땐 프라자점에 전화해 옷을 보내달라고 했다"면서 "배송에 1시간쯤 걸렸는데도 손님들이 '다른 매장에 다녀오겠다'며 흔쾌히 기다렸다가 옷을 사가곤 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본점은 여태 살아남은 지역 백화점의 대표 점포다. 좀더 오래도록 살아남고 발전했으면 좋았을 텐데 문을 닫는다니 아쉽다고"고 했다.

다른 방문객들도 백화점 곳곳에서 열리는 고별 점포정리 행사장, 할인 행사장을 돌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신모(39) 씨는 "오랜 추억이 떠올라 마지막 쇼핑을 하러 왔다. 내게 휴대폰이 없던 2000년대 중반까진 고등학교·대학교 친구들과 시간을 정해 대백 정문 또는 남문 앞, 시계탑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친구가 나타나기만 기다리기도 했다. 모두 모이면 일단 백화점에 들어와 아이쇼핑이라도 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오모(47) 씨도 "학창시절 대백 정문 앞은 차와 사람으로 너무 붐벼 대백 남문 앞을 약속 장소로 정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대백 앞에 무대와 광장이 생겨 차도 다니지 않고 중파(중앙파출소)와 제일서적, 한일·아카데미극장도 모두 사라지는 등 상당히 많은 것이 변했다. 대백까지 본점 영업을 마친다니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대백프라자에서 만나요"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최근까지 일하던 입점 점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삶의 터전이자 희노애락이 있던 곳을 이제 떠나야 해서다.
1층 한 건강식품 매장에서 개인물품과 상품을 상자에 옮겨담던 직원(57)은 "휴점 소식을 듣고 온 손님이 저마다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다. 최근엔 상품을 추가 주문하지 않았더니 찾는 물건이 없다며 발길 돌린 손님도 있었다"면서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이곳을 그만두는 대로 일을 쉴 예정이다. 6년 정도 여기서 일했는데 떠나자니 서운한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3층 속옷매장 직원 김서하(27) 씨도 "대백 본점 휴점을 계기로 잠시 휴직한 뒤 나중에 복귀할까 한다. 5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3년 전쯤부터 본점에 손님, 특히 젊은 손님이 많이 줄더니 결국 이렇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임직원에게도 이번 본점 영업 중단이 더욱 각별하다. 누군가에겐 몇년 스쳐 지난 근무처일 수도 있으며, 다른 누군가에겐 평생을 몸담은 기억이 남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날 오전 구정모 회장, 박효진 본점 점장 등 임직원들은 '마지막 개점'을 기념하는 고객맞이 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정문에서부터 양쪽으로 줄서 기다리다가 백화점 문을 여는 순간 입장하는 손님들에게 허리숙여 인사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손님들은 얼떨떨해하다가도 이내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 인사한 뒤 입장했다.
대백 한 직원은 "행사를 준비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 직원들이 눈물을 보였다"고 전했다.
박효진 점장은 "1993년 28살 나이로 대백에 입사한 뒤 본점에만 18년정도 근무했다. 마지막 본점 점장이라는 점 때문에 '내가 좀더 잘했어야 했는데' 싶어 마음이 무겁다"며 "본점은 휴점에 들어가지만 프라자점은 여전히 영업을 이어간다. 시민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도록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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