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얼굴 알고 이름 부르면 '후다닭'…개 못지않게 똑똑한 '계'
대구 서구에 사는 김소영 씨가 집 안으로 들어서면 반려동물이 반갑다는 소리를 낸다. '쪼쪼' 혀를 차면 달려오고 이름을 부르면 무릎 위로 올라온다. 소영 씨가 잠시 사라지면 불안한지 울음소리도 낸다. 이것은 여느 반려견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소영 씨는 3살배기 닭 '크림'과 '얼그레이'를 키우는 반려인이다.
◆ 종란 직접 사와 부화 시켜 "더 애틋해"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경로는 대부분 두 가지다. 사오거나 얻어오거나. 그리고 이 모든 방법에는 '이미 태어난' 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하지만 소영 씨의 입에서는 상상도 못한 답변이 나왔다. "제가 낳았어요" 궁금증에 홀로 머리를 싸매고 있자 소영 씨가 이야기를 늘여놓는다. "닭이 아니라 알을 사서 데려왔어요. 23일동안 그 알을 직접 굴리고 온도를 조절하고 품어준 덕에 아이들이 태어났으니 제가 낳은거나 다름없지 않나요?(웃음)" 2018년 8월 중순, 달걀 두 개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껍질에 툭 하고 금이 갔다. 무더운 여름날 주먹보다도 작은 알에서 삐약삐약 소리가 났다. 크림과 얼그레이는 실키닭(백봉 오골계) 종이다.

"닭대가리가 주인은 알아보나요?" 반려동물로 닭을 키운다고 하면 제일 먼저 들려오는 질문이다. 하지만 닭을 키우는 계주들에게 이 말은 실례다. 주인을 알아보는 것은 당연지사. 소영 씨가 화장실이라도 가면 '빡' '빡' "빡' 울면서 찾으러 다니기 바쁘다. 닭은 생각보다 똑똑하다. 상당히 많은 얼굴을 구분할 수 있다. 실제 크림과 얼그레이는 소영 씨의 목소리와 생김새를 알아본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옷, 똑같은 신발을 신고 불러도 절대 가지 않는다. 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크림과 얼그레이는 주인을 제외한 사람에게는 맹견 수준으로 난폭하다. 함부로 손 내밀었다가 피 본 사람이 여럿이라고. 또한 사람처럼 모든 색을 볼 수 있는데 좋아하는 채소들이 대부분 초록색이라 그런지 '초록색은 맛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흥분해서 다가온다. 반면 빨간색 빨래 바구니를 가장 싫어한다. "강렬한 색깔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낯선 것들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그 덕분에 의도치않게 절약하며 살고 있네요(웃음)" 새로운 옷이나 신발을 신으면 꼭 부리로 공격하는 탓에 소영 씨는 타의적 단벌신사다.
◆ 울음소리·날리는 닭털…닭 키우기 쉽지 않네!
소영 씨의 집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도대체 언제 싼 건지 가득 흘려놓은 똥들은 소영 씨를 비롯한 계주들을 힘들게 한다. 그리고 계주가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맹장변'이다. 밝은 밀크초콜릿에서 검은색까지 색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닭들이 하루에 3번쯤 보는 대변이다. 일명 '초코똥' 이라 불리는 이것은 지옥 같은 냄새가 난다고. 손에 묻거나 닭들이 밟는 날에는 그야말로 대참사다. 닭의 소화기관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소영 씨는 아직도 냄새에 적응이 안 된다고 한다. 가볍고 작은 솜털도 소영 씨를 괴롭게 한다. 온 집안에 털이 떠다니고 쌓여서 검은 옷은 당최 입을 수가 없다. 그리고 새들의 피부에서 나오는 각질의 양도 어마무시하다. 깃털을 정리하며 떨어지는 하얀 각질은 잠깐의 몸 단장에도 수북하게 쌓인다.

집 안에서의 만행이야 소영 씨가 감내하면 될 문제다. 하지만 집 밖으로 새나가는 닭들의 울음소리는 소영 씨가 막아낼 재간이 없다. 아침을 여는 동물 답게 크림과 얼그레이는 새벽 5시만 되면 우렁차게 울어 댄다. 빛을 조절하면 우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데, 이 녀석들은 아무리 어두워도 정확히 5시만 되면 목청을 가다듬는다. 소영 씨는 운 좋게도 노인분들이 많은 동네라 닭 소리를 반가워하는 분들이 대다수다. 이웃분들과 친분을 쌓아 그 소리가 부정적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대중적인 반려동물이 아닌 것도 양육의 큰 걸림돌이다. '아프면 어떡하나' 계주들이 하는 최대의 고민이다. 수탉인 크림과 얼그레이는 다행이도 병치레 없이 잘 크고 있지만 암탉의 경우 알이 막히거나 복수가 차는 등 아픈 경우가 많다. "여름철에는 모기를 조심하고, 산책 후에는 발을 구석구석 소독해주고, 밥 때가 되면 잘 챙겨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발이 더러우면 특정 상처에 균이 침입해 생기는 '범플풋' 이 생길 수 있다. 또 과영양은 독이 된다고 하니 깨끗한 사료와 물, 그리고 적절한 양의 야채와 밀웜으로 식단 관리를 해 주는것도 필수다. 작은 조류들은 아파도 수술을 할 수가 없기에 아프기 전에 예방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반려인 모여 양육정보 공유…'계모임'은 필수
비주류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커뮤니티다. 반려동물로서 닭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 보니, 계주들끼리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닭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가끔 소풍 겸 만난다. 크림과 얼그레이에게 사회성도 길러줄 겸 시작한 계모임은 이제 소영 씨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인연이 됐다.
닭 양육 정보를 공유하는 '계모임'에서는 요즘 크림이와 얼그레이가 타고 다니는 유모차가 핫이슈다.
집 옥상에서만 산책하는 아이들을 가엽게 여긴 소영 씨가 떠올려낸 일종의 양육 팁이다. "사실 얼그레이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어요. 예전에 산책하다 길고양이한테 잡혀갈 뻔한 일을 겪었거든요" 하네스나 목줄 없이 동네 근처 둑에 자유롭게 풀어 놨는데 갑자기 길고양이가 튀어나와서 얼그레이를 물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
천만다행으로 바로 경사진 곳이 나와 얼그레이를 문 채로 고양이가 굴러떨어지며 잠깐의 틈이 생겨 구조할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 한 일이다.
그 이후로 바깥 산책은 꿈도 못 꿨지만 이제는 계모차가 있기에 안전하다. 또한 계주들은 입 모아 이야기한다. "닭에 목줄메고 나가면 누구 한 명은 꼭 한 소리를 하시더라고요. 그 따가운 시선 덜 받아도 되는 데에는 유모차가 최고죠"

'계(鷄)모차'야 '개(犬)모차'에서 탄생했다지만 사실 닭을 키우는 데 필요한 제품들은 시중에 판매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닭기저귀'만 해도 그렇다. 닭은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신발, 옷, 악세사리가 필요한 동물이 아니라, 배변을 조절할 수 없어 기저귀가 가장 필요한 동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닭을 입양했다가도 파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모임으로 친분을 쌓은 청계 수탉 '무무' 계주 손하영 씨와 소영 씨는 닭을 위한 브랜드를 런칭했다.
하영 씨는 조류 기저귀를 제작하고, 소영 씨와 또 한 명의 디자이너는 여러 종류의 닭을 귀여운 캐릭터로 만들어 여러 문구용품을 제작하고 있다. "셋이서 닭을 위한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닭을 키우다보니, 닭이 반려동물로서도 사랑받길 바라게 되네요. 언젠가는 평생 A4용지 한 장 면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닭들의 비인간적인 공장식 사육을 개선하기 위해 좋은 일들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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