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가게 사장, 김 씨 "갚으려 해도 일자리 없어 막막"
식당 운영, 최 씨 "몸도 불편한데 무슨수로 갚나"
지난주 대구지방법원에는 파산 재판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섰다. 법정 앞에서 수십 명이 초조하게 전광판 명단을 지켜봤다. 법원 경위가 이름을 차례로 부를 때마다 이들은 한숨을 내쉬며 법정으로 들어갔다. 파산을 위해 법원을 찾은 이들은 저마다 굴곡진 사연을 갖고 있었다.
◆옷 가게 사장, 김 씨
법정 앞에서 만난 김모(55) 씨는 한때 대구에서 옷 가게를 두 곳이나 운영할 정도로 잘나가던 사장이었다. 단골도 생기고, 가게 규모를 키우고 싶다는 꿈에 부풀기도 했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5년쯤부터 본사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더니, 김 씨가 운영하던 매장들도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
김 씨는 자신의 장사 수완을 자신했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은행, 친구, 가족들에게 수백만~수천만원씩 빌렸다. 하지만 매달 수백만원이 나가는 월세, 인건비 등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빌린 돈에 그간 모은 돈을 합쳐봤지만 1년도 채 버틸 수 없었다. 결국 2016년 김 씨는 매장 두 곳의 문을 모두 닫았다. 그런 그에게 남은 것은 밀린 인건비 등 1억여원의 빚뿐이었다.
이후 김 씨는 몇 년간 낮에는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저녁에는 식당 일을 하면서 근근이 빚을 갚아나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또 다른 난관이었다. 일하던 식당의 주인은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고, 옷 가게 아르바이트는 근무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빚을 갚기는커녕 하루하루 생활조차 빠듯한 상황이었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김 씨 혼자서는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김 씨는 "옷을 파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의류매장 쪽으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지만 일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경기가 어려워 가게 주인이 혼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몸이 고단하더라도 일을 해서 어떻게든 빚을 갚아보려고 했지만 코로나19 이후로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 파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식당 사장, 최 씨
법정 밖 의자에 앉아 있던 최모(60) 씨도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장애가 있는 그는 이날 형과 함께 법원을 찾았다.
20여년 전 식당을 하다 망한 최 씨는 당시 카드사에서 빌린 2천여만원의 빚이 어느새 1억원으로 불어나 파산을 신청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최 씨는 식당을 무리하게 확장했다가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설상가상 아내도 최 씨를 떠났다. 두문불출하던 그는 주변 친구들과도 점차 멀어졌다.
이후 그는 수년간 홀로 일용직 노동을 하며 빚을 갚았다. 일을 마친 뒤에는 술로 하루의 고단함을 푸는 게 일상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과음을 하고 집으로 향하던 어느 날. 내리막길에서 뒤로 넘어졌고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뇌혈관이 터진 줄도 모른 채 먹고사는 일이 바빠 상처를 그대로 방치했다. 최 씨는 갈수록 시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폐인처럼 살아가던 최 씨를 심상찮게 여기고 병원으로 데리고 간 건 그의 형과 누나들. 최 씨는 늦게나마 수술을 받았지만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꾸준히 일을 하기 어려운 최 씨를 위해 형제는 몇 차례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한계에 부딪혔다. 최 씨 역시 '언젠가 빚을 꼭 갚을 것'이란 의지를 잃은 지 오래다.
최 씨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월 70만원의 수입밖에 없는데, 2년 전 1억원의 빚을 갚으라는 지급명령서를 받았을 때 눈앞이 깜깜했다. 몸도 성치 않고 나이도 있는데 무슨 수로 그 큰돈을 갚을 수 있겠냐"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법무사를 찾아갔고 파산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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