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대통령의 아들들

입력 2021-06-24 18:23:31 수정 2021-06-25 06:20:20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이강석 양자 입적 기념사진. 왼쪽부터 양부·양모인 이승만·프란체스카 도너, 이강석, 친부·친모인 이기붕·박마리아. 매일신문DB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이강석 양자 입적 기념사진. 왼쪽부터 양부·양모인 이승만·프란체스카 도너, 이강석, 친부·친모인 이기붕·박마리아. 매일신문DB
황희진 기자
황희진 기자

대한민국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아들들을 꾸준히 견제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이 첫 사례다. 그의 친부는 정권의 2인자로 불린 이기붕 국회의장.

자신을 사칭한 '가짜 이강석 사건'까지 벌어졌을 정도로 권세가 대단했던 이강석을, 결국 1957년 국민들이 문제 삼았다. 당시 이강석의 서울대 법대 '부정 편입'에 대해 학생들이 동맹휴학에 나선 것. 그럼에도 이강석의 편입은 취소되지 않았지만,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지배층의 특권 의식을 도마에 올린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게 시발점이 됐다. 3년 뒤 4·19혁명이 터졌고, 이강석은 이기붕 등 친가족 모두를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강력한 '백신' 같은 선례가 된 걸까. 독재 정권이 이어졌으나 이강석 같은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일부에 대해서는 아버지 권력을 지렛대 삼아 부정 축재를 했다는 등의 의혹이 제기됐고, 명쾌한 해명은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의 아들들은 정치판에도 뛰어들었다. 이들은 실은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정치적 조력자로 활동했다. 비유하자면 이성계의 조선 창업을 도운 아들 이방원 같은 경우다.

차이는 이방원의 경우 아버지를 위해 저지른 악행들이 '승자의 역사'로 정당화됐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수십억 원의 선거 자금과 청탁 대가를 받아 챙기는 걸 대통령 아들이라는 이유로 국민들이 눈감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주화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두 대통령의 임기 말에 아들들이 구속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이는 역설적으로 민주화가 제법 이뤄졌다는 방증이었다.

요즘도 현직 대통령 아들에 대한 국민들의 견제가 이어지고 있다. 그가 종사하는 문화예술계 관련 특혜 의혹이 이어지는 중, 의혹을 던진 국회의원들과 SNS로 설전도 벌여 눈길을 끈다.

그러면서 그가 의도치 않게 정치판에 뛰어든 듯한 뉘앙스도 만들어졌지만, 다행인 건 지지자들이 그에게 실제 정치판 입성을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야권의 비판 공세를 이유로 지지층 결집을 위한 '박해' 프레임을 대통령 측근들에게는 적용해도 대통령 아들에게는 씌우지 않는 것은, 아마 이강석의 교훈을 의식해서가 아닐까.

그도 이강석을 좀 아는 것 같다. 최근 SNS를 통해 "대통령 아들이란, 경찰도 잘못이 있으면 언제든지 잡고, 국회의원은 기분 나쁘면 언제든지 국감에 부를 수 있는 국민 중 한 사람일 뿐"이라며 "국회의원이 아무 근거 없이 저를 국감에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저에게는 특혜가 있을 수 없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주장에서 스스로 박해 프레임을 뒤집어쓰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국감에 국민을 기분이 나빠서 근거도 없이 부르는 일은 없다. 여야가 근거를 따져 국감 증인을 합의로 채택한다. 이어 증인에게 보내는 출석 요구서는 영장 같은 게 아니라서 응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이걸 대통령 아들이라서 받는 일종의 박해라며, 특혜의 반대편에 서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국감에 나가기 싫다면 국민의 권리로 거부하면 된다. 다만, 혹여 그의 SNS 발언이 여야의 국감 증인 채택 과정에 가이드라인으로 전해지지는 않기를 바랄 뿐.

국민들은 그를 같은 일반 국민으로 보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과거 대통령의 아들들이 저지른 잘못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역사 의식이 꽤 있어서, 좀 더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것일 터다. 이게 박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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