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소년 불법 마약, 지방정부 나설 때다

입력 2021-06-26 06:30:00 수정 2021-06-27 19:08:19

6월 26일은 UN이 정한 '제35회 세계마약퇴치의 날'
이경희 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

이경희 전 제10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2016~2019년)
이경희 전 제10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2016~2019년)

6월 들판에 꽃양귀비가 지천이다. 새로운 관광 명소나 사진 명소로 떠오른 곳도 많다. 그러나 빨간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아편의 무서움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버닝썬 사태와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가 자녀들의 마약 범죄 소식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법 마약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일면이지만, 꽃양귀비와 양귀비를 구분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오히려 상류층 문화로 인식되어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분석이 마음을 때린다. 일상화로 인한 경각심의 해이 현상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의 대마 합법화 조치는 마약 사용을 일상적인 일로 여기게 하고, 클럽이 아니어도 집에서 키보드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분별력이나 경각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가 이들에게 불법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한 정보 제공과 지도를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마약은 나쁜 것' 수준의 형식적인 교육 시간을 확보한들 이미 몇 수 앞에 가 있는 청소년들에게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최근 충격적인 10대들의 펜타닐 사건 역시 마약 정책의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지만,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불법 마약의 확산도 우려스럽지만 불법 마약에 무신경한 우리 사회가 더 무섭게 느껴진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새로운 팬데믹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전문가도 많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예방 교육이 실시될 수 있도록 면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마치 꽃양귀비와 친숙해질수록 양귀비에 대한 경각심을 강화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중독에 이른 청소년들에 대한 치료·재활 정책은 더욱 갈 길이 멀다. 의료·사법·교육·복지 등의 다원적인 협력이 필요하지만, 총리실 산하 마약대책협의회는 마약 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협의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중앙정부의 정책이 지방에 이르는 전달 체계에도 미비점이 많다.

마약류에 대한 예방 및 치료·재활 정책은 애초 지역사회 중심으로 시행해야 할 사업이다. 지역의 청소년들이 불법 마약에 노출되어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고, 가정 파괴와 사회적 불안 요소로 인해 지방정부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지역 여건을 감안한 종합적이고 장기적 정책을 수립·시행할 기구를 설립하고, 지방의회는 관련 조례를 제·개정하고, 교육청은 학생들을 위한 예방 교육과 건전한 활동 지원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중앙정부의 실패 내지 정책 부재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마약 없는 밝은 사회를 이룩해 모두가 건강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목표로 1992년 대한약사회가 주축이 돼 출범했다.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13개 지역본부가 설치돼 있으며 모두 약사 출신이다. 이들 지역본부는 모두 약사회원들의 마약 퇴치 성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달 26일은 UN이 정한 제35회 세계마약퇴치의 날이다.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마약 남용 없는 국제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정한 것으로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이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유관 기관 및 시민 단체들과 협력해 조촐하게나마 기념행사를 갖고, 지역의 유공자들을 표창·격려하며, 시민들로 하여금 불법 마약의 심각성을 깨우치는 기회로 삼는 것이 곧 마약 없는 지역사회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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