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혼자 그리고 같이

입력 2021-05-26 11:47:19

박소현 피아니스트
박소현 피아니스트

지난 토요일 범어성당 드망즈홀에서 연주를 했었다. 범어성당 봉헌대축일 5주년 기념 음악회로 여러 성악가들과 함께하는 연주였다. 출연한 성악가들은 10명 남짓이었으나 피아노 반주를 하는 것은 나 혼자였다.

80~90분 프로그램의 연주회는 독주회를 통해 종종 해왔던 터라 체력적인 부담은 적었지만, 한 무대에서 10명이 넘는 각각의 성악가를 한 번에 만나는 것은 잘 없는 일이라 약간 긴장이 되었다. 특히 반주 전문 피아니스트가 아닌 나에게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무대이기도 했다.

나는 피아노를 시작한 이래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피아노 독주를 전공했다. 중간중간 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실내악을 부전공으로 택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피아노 듀오, 피아노 트리오 등 피아노가 중심이 되는 소수 편성을 선호하는 매우 기악적인 성향을 띠는 학생이었다. 무엇보다도 학생 시절에는 평가 등의 이유로 무대에는 혼자 서는 것이 기본으로 당연한 것이었고 그게 익숙한 일상이었다.

그러다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첼로와 바이올린을 하는 선·후배와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하게 되었다. 셋 모두 부지런히 연주 경력을 쌓고 더 공부하기를 원했기에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전곡을 비롯해서 꾸준히 학구적인 프로그램으로 연주를 진행 중이다.

생각해보면 의외로 셋이서 처음 같이 시작할 때는 신나고 설레는 긍정적인 감정들 사이에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존재했었다. 친한 사이라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은 없었던 반면에 혼자 눈치 볼 것 없이, 무대에서 실수하는 일이 있더라도 '혼자 책임지면 된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독주와는 다른 무게감의 책임감이 어깨에 씌워진 기분이었다.

세 명이 함께 연주하는 것이니 책임감을 1/3로 나눠가져도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잘못하면 자칫 팀 전체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된 불편함이었다. 몇 번의 연주를 한 후에야 이런 불편함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이 호흡하고 이끌어나가는 함께하는 음악을 통해 배우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셋이서 의견을 조율하다 보면 종종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 순간일 뿐, 과정을 통해 얻는 뿌듯함이 훨씬 컸다. 음악 안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좀 더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되고 더 잘 들으려 노력하게 된 것도 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확이었다.

여전히 나는 독주 악기로 피아노를 가장 좋아한다. 독주를 주로 하기에 더욱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종종 주어지는 트리오 연주의 기회라든가, 다른 악기 혹은 성악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서 같이 연주하는 경험이 오히려 더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 같다. 피아노는 외로운 악기임에 틀림이 없지만, 언제나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악기란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가고 있다. 마치 우리의 삶이 혼자, 그리고 또 함께 흘러가는 것과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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