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이희은 씨 외할머니 故 강영옥 씨

입력 2021-05-23 14:45:05

이희은 씨 외할머니 故 강영옥 씨가 2016년 1월 제주도 성산일출봉 가족여행에서 찍은 기념 사진. 가족제공.
이희은 씨 외할머니 故 강영옥 씨가 2016년 1월 제주도 성산일출봉 가족여행에서 찍은 기념 사진. 가족제공.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 나갈 때면 항상 생각했던 것이 하나 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쩌지? 어딜 가든 마음의 불편함을 가져다주었던 딱 하나의 생각. 혹시 외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당뇨를 앓아온 외할머니가 갑자기 아프진 않을까 하는 나의 걱정들은 외국에 있을 때면 걱정이 더해졌고, 한국에 있을 때도 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이 한 가지의 걱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삼 남매 중 첫째인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에게 첫 손녀이던 저이기에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독일에서 태어난 나를 보기 위해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그 먼 길을 오셨었다.

외할머니 집은 안양에 있었지만, 서산에 있는 작은 시골집에 2주에서 한 달 정도씩 지내다 오시는 게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나는 방학 때마다 서산에 동생이나 사촌 동생이랑 가서 나비도 잡고, 잠자리도 잡고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밭에서 갓 따온 재료들로 만들어진 간식과 밥을 먹으며 방학을 보냈다. 그때 외할머니께서 해주셨던 통 감자구이, 밭에서 따 온 옥수수, 토마토 설탕 무침, 얼음을 동동 띄운 미숫가루는 도시에 살면서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보다 외할머니가 더 좋다고 말해서 엄마가 슬퍼했을 정도로 나의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비록 외할머니와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주말이면 외할머니네 집에 가서 자고 오고 목욕도 가고 했었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외할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조직 검사 중 외할머니의 동맥이 잘리는 사고가 있었고 나흘간 피가 멈추지 않았다. 그 후 대형 병원으로 옮겼지만, 병동 내의 감염으로 감염병동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서 오히려 염증이 생기는 등 계속 상태가 악화됐다. 그리고 두달 여만에 외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정말 다행스러웠던 건 외할머니의 마지막 날은 그 어느 때보다 고통받지 않고 편안한 얼굴이셨다는 것이다. 심정지가 오기 전날 이상하게도 그날 병문안에서 외할머니랑 대화도 정말 많이 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들도 보여드리고 외할머니 건강이 너무 좋아 보였었는데 왠지 집에 가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던 날이었다. 그날이 외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를 할 수 있는 순간이라는 걸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외할머니는 항상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적어도 내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을 때까지는 정말 옆에 있을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와 외할머니의 사이는 정말 애틋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돌아가신 조부모님에 대해 이렇게 슬프고 그리운 마음이 드는지 몰라도, 짧아 보이는 이 글을 마무리 짓기까지 3년의 세월이 걸렸다. 한문장 한문장 적어나갈 때마다 눈물이 핑 돌아서 도저히 글을 몇 줄 이상 적을수가 없었다.

외할머니, 저는 결혼해서 태국에서 살고 있어요. 꿈에라도 찾아와 주세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천국에서 아프지 않고 편안히 지내세요. 나와 우리 가족 모두 잘 지내고 있는걸 기쁘게 봐주시고 있길 바래요.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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