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독여취식(讀如取食)

입력 2021-05-22 06:30:00

'독여(讀如)'는 책을 읽는 것이고, '취식(取食)'은 밥을 먹는다는 뜻이다. '독여취식'은 밥이 몸의 양식이라면,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의미다. 지식의 보고(寶庫)인 책(冊)의 한자(漢字)는 예전에 죽간(竹簡)이나 나무쪽(木簡)에 글을 적어 끈으로 묶은 자형(字形)이다. 책은 생각하고 연구한 내용을 엮어 모은 것으로 예부터 지식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책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아비를 천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고 했다.(冊賤者 父賤者) 인간은 책을 읽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고, 경험을 쌓아 미래를 예측하는 지혜를 갖는다. 속담에 '짐승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지식을 갖추고 많은 사람에게 덕을 베풀어 명성을 남기라는 교훈이다.

책을 서계(書契)라 하는데 자형에서 말했듯이 나무쪽에 문자를 기록하여 엮은 것이다. 지금은 문서를 통해 계약이 이루어지지만 예전의 서(書)는 나무쪽에 글을 써 간(簡), 책(策), 편(篇), 부(簿), 적(籍) 등으로 나눠 구분했다. 종이가 없을 때라 찰(札)은 엷게 쪼갠 나무쪽에 글을 새겼는데 오늘날의 명찰(名札), 개찰(改札), 감찰(鑑札), 서찰(書札)과 같다. 예전엔 책은 학문의 벗임과 동시에 인생의 스승으로 여겼는데, 그 예로 독서상우(讀書尙友)라 하여 옛 성인들을 책을 통해 벗도 하고 스승으로도 모셨다. 그러니까 책을 지은 저자를 살아있는 인격체로 생각했으며, 사상이나 지식을 저장한 창고나 당대의 거울이자 후대의 귀감으로 여겼다.

크리스트교의 성경이나, 불교의 팔만대장경, 이슬람의 코란(koran), 유교의 사서오경 등은 유일한 영속물이다. 인간은 많은 지식을 책 속에 담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지혜의 그릇으로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인간은 책을 통해 천지간에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책은 체험과 지식의 전달 매체로 새끼를 주어 냄새를 맡고 비린내가 나면 생선 묶었던 것임을 알고, 종이에서 향내가 나면 향 싼 종이임을 알 듯 지식을 습득하여 왔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빠지나 콩나물은 자라듯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다. 많은 책을 읽고 소양을 쌓으면 향 싼 종이에서 향내 나듯 인격의 향기가 풍겨 나오고, 그 열매는 연마된 수양에 비례하여 향훈(香薰)을 남긴다.

조선 제16대 인조(仁組 )때 학자 조위한(趙緯韓1567~1649)이 홍문관에서 숙직을 하고 있는데 한 학동(學童)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덮더니 내던지며 말했다.

"책을 덮기만 하면 익혔던 내용들이 모두 머릿속에서 달아나 버리니 이래가지고서야 책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자 조위한이 학동을 불러 조용히 깨우쳐 주었다.

"사람이 밥을 먹으면 그 밥이 항상 뱃속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삭아서 똥이 되어 빠져나가버리고, 그 영양분만 남아서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라네."

조위한은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을 토벌하고 난 뒤 벼슬길에서 물러났으나, 다시 대제학에 천거되어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80세에 중추부사를 지냈다. 서예에도 이름이 높으며, 해학(諧謔)에도 능했다고 '국조인물고'에 전한다. 유민탄(流民嘆)이란 작품을 썼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사)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임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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