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는 모른다(우남희 글/ 청개구리/ 2020년)

우리는 각기 살아온 삶에 따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색깔은 다르지만 저마다의 삶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나없이 유년 시절에 좋았던, 슬펐던, 힘들었던 경험들이 어떤 날은 소나기처럼, 어떤 날은 단비처럼 마음 안에서 내리는 것을 느낀다. 유년의 기억들이 우리의 영혼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시를 읽으면 유년의 그때로 돌아가고 그 감성들이 살아난다.
우남희 시인의 '봄비는 모른다'는 봄비처럼 속삭이듯 살며시 다가왔다. 짧은 형식의 동시지만 온몸으로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훅 들어오지는 않지만 따스한 온기와 맑은 향기가 내 몸을, 내 감성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이/ 내 밥상에 나뭇잎을 올렸다// 고맙습니다만/ 배고파도/ 아무거나 먹지 않습니다"(거미의 자존심)
경청은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거미의 자존심'은 거미의 마음 안에 갇혀 있던 언어들을 무심하면서도 진지하게 들려주고 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내가 책임을 진다는 거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타자인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의 심상이 참 좋다.
"저게 무얼 한다고?/ 했다가는 큰코다치지// 갈그락갈그락/ 배추색 벽지 뜯어내고/ 하늘 벽지 끌어들인 것 봐// 저 어린 것이 해냈대"(배추 애벌레)
만나고 난 뒤 돌아섰을 때 두고두고 가슴 깊이 남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다. 시도 그렇다. 시집을 덮고서도 생각나는 시가 나는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감동의 대답을 원하겠지만 '그냥'이다. '그냥' 내 가슴에 들어왔다. 영화처럼 스펙터클한 장면은 없지만 '배추 애벌레'는 '그냥'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동시다.
"굴다리 밑에/ 옹기종기 모인 집들// 찾아와/ 문 두드리는 손님은/ 바람// 대답은/ 콜록콜록"(종이상자 집)
고통은 오직 고통을 당하는 사람만의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고통이 나의 것은 되지 않는다. 고통은 당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밖에 없는 슬픈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한없이 안타까워하며 함께하려고 한다.
절망은 희망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종이상자 집'은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거나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아 절망에 빠진 이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시인은 '종이상자 집'을 통해 절망의 상황이 오더라도 혼자가 아니며 함께 견디어 내면 어느 순간 희망이 찾아올 거라는 믿음을 준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 속에서도 어디선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오는 희망이 있으니 살아가는 힘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동시집 '봄비는 모른다'는 작가의 감성이 나의 감성과 맞아떨어져서 자꾸 뒤돌아보게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프리지어 꽃말처럼 이 동시집은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동시는 나의 소울메이트다.
최중녀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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