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도권에 대응하는 행정 통합, 지금부터

입력 2021-05-09 15:17:07 수정 2021-05-09 19:30:30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매일신문 DB
이철우 경북도지사. 매일신문 DB

"처녀여, 당신은 망토로 등불을 가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내 집은 캄캄하고 적막하니 당신의 등불을 좀 빌려주십시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캄캄한 현실을 밝혀줄 빛을 갈구하는 절절함이 전해진다.

대구경북 행정 통합도 절박함에서 시작됐다. 행정 통합은 콘크리트 벽처럼 굳어진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지방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비춰줄 희망의 등불이다.

최근 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는 행정 통합을 내년 지방선거 이후에 진행하는 것으로 최종 보고했다. 행정 통합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코로나19 대응, 대선 일정 등을 종합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방향은 맞지만 시기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정 통합 시작은 대구·경북에서 했지만, 중앙정부 각 부처 차관을 중심으로 한 범정부지원단(TF)이 꾸려지고, 국회는 물론 충청권과 부산·울산·경남 등에서도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국가 전체적인 틀 개선 차원에서 타당성을 인정한 것이다. 심각하게 기울어진 수도권과 지방이란 운동장을 그대로 둔 채 이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국가적 공감일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 구글의 본사는 워싱턴D.C나 뉴욕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인근 마운틴뷰(Mountain View)라는 인구 8만 명의 작은 도시에 있다. 구글러(Googler)들은 세계 어디서 근무하든 구글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반면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경우 서울에 근무하는 직원과 지방에 근무하는 직원 간 자긍심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정치·경제와 교육, 문화, 주거 환경 등 인프라가 과도할 정도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보니 수도권에 살면 성공한 인생 같고 지방에 살면 2등 시민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구조는 바로잡아야 한다. 행정 통합이 그 시작이다.

다행히 지난 몇 개월간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도민들 사이에서도 대구·경북은 '각자 따로'라는 인식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 통합신공항 프로젝트만 해도 처음에는 대구 시민들 사이에서 왜 그 멀리까지 가느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대구 인근 외곽으로 옮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유럽이 경제 통합을 먼저 한 후에 하나의 EU로 통합했듯이, 시·도민들의 행정 통합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지금부터 통합에 버금가는 협력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 시·도민의 삶과 가장 밀접한 버스 환승제 확대 등 교통·관광·환경 분야에서부터 대구시와 논의를 깊이 있게 진행할 것이다.

특히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현재 대구 도심에 비싼 부지를 깔고 있는 여러 공단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여유 있는 영천·칠곡·구미 등으로 이전해 최첨단 스마트 시설로 업그레이드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전하고 남는 대구 부지에는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예술·교육 서비스 기관 등을 유치·조성하는 플랜을 함께 검토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또 타 시도와 협력해 행정 통합에 대한 국가 차원의 법적·제도적 근거 마련도 계속 준비해 나갈 것이다.

대구·경북 행정 통합 추진은 마침표가 아니라 콤마(comma), 즉 쉼표다. 잠시 숨을 고르고 시·도민들에게 통합의 장점을 가시적으로 시현(示現)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힘을 모아 희망의 등불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 나가야 한다. 운명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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