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영화 '올 더 머니'(All the money)를 봤다. 미국의 석유 재벌인 폴 게티(Paul Getty)의 손자 납치 사건 실화에 기초한 영화다. 게티는 1960년대 세계 최고 부자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부를 쌓았으나, 자신의 집에 유료 공중전화를 설치, 외부인들은 돈을 내고 전화를 이용하게 할 정도로 구두쇠였다. 심지어 손자를 유괴한 납치범이 몸값으로 1천700만 달러를 요구하자,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협상을 통해 몸값을 300만 달러로 낮춘 후에는 세금 공제가 가능한 최대 금액인 220만 달러를 지불하고, 나머지 80만 달러는 아들에게 연리 4%로 갚게 한다. 수전노 게티였지만, 사후 그의 부와 평생 수집한 예술품은 게티 미술관과 게티 센터로 재탄생한다. 미국 LA 교외에 위치한 게티 센터는 연간 2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LA 최고의 명소가 되었고, 구두쇠 게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로 재평가된다.
이 외에도 개인 컬렉션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 미술관으로 독일의 철강왕 티센의 컬렉션을 기증받아 스페인 정부가 1993년 건립한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자(Thyssen Bornemiza) 미술관, 영국의 사업가 헨리 테이트 경(Sir. Henry Tate)이 1897년 런던에 설립한 테이트 갤러리(2000년 테이트 브리튼과 테이트 모던으로 분리)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남긴 예술품이 화제다. 2만3천 점에 달하는 방대한 수량도 수량이지만, 60건에 달하는 국보·보물급 문화재와 피카소, 고흐, 자코메티 등 세계적 화가의 명작 등, 질적인 면에서도 세계 어느 개인 컬렉션에 뒤지지 않는다. 삼성가는 이 작품들을 국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과 작품 연고지 미술관 등에 기증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과연 이 귀중한 컬렉션을 여기저기 흩어 놓는 것이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티센이 스페인 정부에 미술품을 기증할 때 붙인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컬렉션을 한 장소에 보관, 전시할 것'이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이건희 컬렉션을 갖고 세계 일류 미술관을 하나 건립한다면 국격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컬렉션도 컬렉션이지만, 미술관 건물 자체도 최고의 명품으로 지어야 한다. 뉴욕타임스지가 2015년 꼭 가 봐야 할 세계적 명소 52곳 중 하나로 선정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가 한 예다. 앞서 언급한 게티 센터는 미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리차드 마이어 작품이다.
미술관 건립 장소로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인근 부지나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부지 등이 거론되곤 한다. 그런데, 왜 서울이어야만 하는가? '서울 공화국'을 비판할 때하고 마음이 바뀌었는가? 몇몇 지자체가 미술관 유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다 그 나름의 일리가 있지만, 오백년 도읍지 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육성할 수 있는 문화·관광 도시는 천년 고도 경주이다. 1980년대 철강산업의 쇠퇴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던 스페인의 빌바오는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함으로써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활기찬 도시로 바뀌었다. '이건희 미술관'과 함께 세계적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날 경주를 기대하여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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