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대사의 열쇠는 이두”…이영희 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별세

입력 2021-04-25 21:49:57 수정 2021-04-26 16:12:16

지난 2013년 매일신문과 인터뷰 때의 이영희 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매일신문DB
지난 2013년 매일신문과 인터뷰 때의 이영희 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매일신문DB

일본 고대 시가집 만요슈(万葉集)가 고대 한국어, 즉 이두(吏讀'신라시대 한자의 뜻과 음을 빌려 우리말로 적던 표기법)로 작성됐다고 주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영희(李寧熙) 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가 4월 25일 경남 남해군 남해병원에서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딸 김이선·이정·유리씨, 사위 박세정씨가 있다. 빈소 경남 남해군 추모누리묘지 장례식장 2호실. 발인 27일 오전 7시 30분.

193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이 전 교수는 1945년 귀국, 포항여중을 졸업하고 포항여고를 다니다 이화여고에 전학해 졸업했다. 이화여대 영문과 수석 졸업 후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됐다.

이후 한국일보사에 입사해 소년한국일보 편집부장, 한국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1973∼1975년에는 여기자클럽 회장으로도 활약했다.

1981년에는 제11대 국회의원(전국구·민주정의당)을 지냈다. 이후 방송위원회 위원과 공연윤리위원장, 한·일친선협회 부회장, 한일비교문화연구소장 등을 지냈고,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포스코 인재개발원 제철사 연구 교수로도 일했다.

◆도쿄 출생 일본어도 완벽 구사

생전 지난 2013년 매일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전 교수는 "1998년 후반 제철사(史)를 연구해달라는 고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의 부탁으로 포항에서 연구를 통해 철기와 벼를 들고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일본을 세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됐어요. 포항의 연오랑 세오녀 사화(史話)를 역사적 사실로 증명하는 성과도 뒤따랐고, 일본의 역사 왜곡도 하나씩 밝혀나가고 있습니다"고 했다.

그가 고대사 연구에 빠지게 된 것은 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전 교수는 "당시 한국일보의 문화부장으로 있으면서 천마총 발굴 기사를 연일 1면 머리기사로 올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문화 기사를 1면에 게재하는 일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어요. 이후 제대로 기사를 다루려면 역사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역사서를 찾았어요. 하지만 제대로 된 번역서가 없었어요"고 회고했다.

그는 차라리 역사서 원문을 찾아보기로 했다. 기자 생활을 하며 틈틈이 역사서 속 이두(吏讀'신라시대 한자의 뜻과 음을 빌려 우리말로 적던 표기법)를 해독하며 고대사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당시 한국일보 사주였던 장기영 씨가 거액의 취재비를 주며 일본에 다녀오라고 한 것. 일본에서 태어나 10여 년을 살아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그를 장 씨가 알아본 것이다.

◆이두로 읽으니 뜻이 통해□

이 전 교수는 "일본의 한 신사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돌기둥에 새겨진 신사의 이름을 그곳 관계자도 정확히 모르더라고요. 제가 이두로 읽었더니 뜻이 통했고, 그곳 관계자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번뜩했습니다. 일본 고대사도 신라의 이두로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담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고 했다.

그는 8세기 초 간행된 일본의 대표적 역사책인 일본서기, 고서기, 풍토기, 만엽집을 구했다. 모두 이두로 기록돼 있었다. 1세기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고대어가 일본어의 뼈대가 됐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힌트를 발견한 것이다.

이 전 교수는 "우리 향가와 비슷한 8세기 일본의 노래집인 만엽집 속에는 명품 신라 도끼를 빠뜨린 목수가 비관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내용의 노래가 있어요. 당시 일본인들에게 고대 한국의 제철기술은 최첨단이었고,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제철 기술자들은 살아서는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렸고, 죽어서는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습니다. 연오랑 세오녀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고대 일본 역사책 4권을 읽다 보니 일본이 이 같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중세를 거치며 사실을 왜곡한 증거가 무수히 발견됐습니다."고 했다.

◆한국은 배척하고 일본은 왜곡하고

그는 연구를 토대로 일본에서 '또 하나의 만요슈'를 발간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1993년~1994년 조선일보를 통해 연재하고 묶은 '노래하는 역사'를 국내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한일고대사 연구에 매진하던 그는 1998년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의 제안으로 제철사 연구를 맡아 본격적으로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에 대해 집필하기 시작했다. 개인 돈을 들여 일본어로 된 잡지 '마나호'('진실'이라는 뜻의 일본 고대어)를 격월간으로 발행했다.

이 전 교수는 "일본인 구독회원만 300여 명입니다. 대부분 변호사, 의사, 신일본제철 임원 등 지식인들입니다. 이들을 상대로 그들의 선조가 왜곡한 역사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저는 한일 역사학계에서 공적입니다. 한국 사학자들은 제가 학계의 일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본 사학자들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숨기기 위해 저를 배척합니다"며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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