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산책] 벗에게 보냄, 寄贈小石山房(기증소석산방) - 박제가

입력 2021-04-17 06:30:00

그대 위해 내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네 爲君設一想(위군설일상)

그대가 너무 기뻐 미치고 싶을 계획! 令君狂欲顚(영군광욕전)

그대가 꿈에서조차 생각지도 못할 즈음 乘君不意際(승군불의제)

그대 집 문 앞으로 내가 들이닥칠 계획! 直入君門前(직입군문전)

*원제: 寄贈小石山房(기증소석산방: 소석산방에 부쳐 드림)

"가께/ 가께/ 하던 이들/ 통 안 오는 이 봄날에/ 오마지도 않던 이가 불쑥 나타나네, 얼싸!/ 막걸리 니 통에다가 이까 시 마리를 들고."

되다만 나의 시조 '얼싸!'다. 지난해 2월에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마을에다 조그만 공부방을 마련했다. 물론 애초에 예상했던 그대로 공부는 통 안 하고, 뭉게뭉게 일어나는 비슬산의 뭉게구름과 온 동네 된장 고추장 다 처발라놓은 듯한 가야산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아주 재미나게 놀고 있다.

퇴임과 동시에 코로나가 와장창 창궐하는 바람에, 친구들 초대 한 번 제대로 못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오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오겠다고 하기도 쉽지 않을 게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오마지도 않던 이들이 가끔씩 불쑥 나타나니, 얼싸!

조선 후기의 시인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벗에 여극(汝克) 조덕민(趙德敏)이란 분이 있었다. 그는 초정과 한 이불을 덮고 자기도 하고, 맑은 못에 발을 같이 담그기도 했다. 돈이 있으면 주머니를 몽땅 털어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면 도도하게 취하여 최대치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도 늘 무언가 부족하게 여겼다. 하룻밤의 이별도 먼 이별처럼 슬퍼하고, 잠시 술에서 깨어 있는 것조차도 애석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위의 시는 초정이 소석산방(小石山房)에 머무르고 있던 여극에게 지어 보낸 작품이다. 보다시피 초정은 자신을 몹시도 좋아했던 그를 위하여 경천동지(驚天動地)할 특별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여극이 만약 그 계획을 알게 되면, 야호! 환호작약(歡呼雀躍) 뜀박질을 하다가 너무나도 기뻐서 미쳐버릴지도 모를 계획이다.

도대체 무슨 계획일까? 찾아오리라고는 꿈에서조차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즈음에, 여극이 살고 있는 산방(山房)으로 초정이 냅다 들이닥칠 계획, 그 계획이 바로 그 계획이다. 그러면 여극은 깜짝 놀라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들입다 달려 나와, 와락 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리라, 얼싸!.

그런데 가만! 이런 시를 여극에게 지어 보내, 이 놀라운 계획을 낱낱이 다 누설하고 있는 것을 보면, 초정이 오늘내일 들이닥치지는 않을 것 같네. 어영부영하다가 올봄이 다 가도록 못갈지도 몰라. 그러다 보면 영영 가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여극, 너무 애가 타게 기다리지 말고, 차라리 여극이 당장 초정에게 냅다 들이닥치시게. 도리어 초정이 너무 기뻐서 미쳐버리도록!

이종문 시조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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